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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노 후광에 라모스 부상/필리핀 대통령선거 전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당지명한 미트라 반발… 집권당 2분/여권 분열·후보난립으로 혼전예상
대통령후보선정을 둘러싸고 오랜 내홍에 시달려온 필리핀의 집권 민주필리핀투쟁당(LDP)이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후계지명을 계기로 마침내 둘로 갈라섰다.
지난해 11월 개최된 후보지명대회에서 라몬 미트라 하원의장(64)이 LDP의 공식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키노 대통령은 지난 25일 측근인 피델 라모스 전 국방장관(63)을 자신의 후계자로 공표한 것이다.
어느정도 예상된 일이기는 했지만 막상 아키노 대통령이 당의 결정을 무시하고 「독자후보」를 내세우자 LDP는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우선 미트라는 즉각 아키노와의 절연을 선언하고 나섰다.
사분오열상태였던 민주세력들을 규합,LDP결성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미트라는 아키노의 후보지명을 용서할 수 없는 배신행위로 단정했다.
반면 라모스진영은 이미 대통령당선이 확정되기라도 한듯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지난 후보지명대회를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당을 떠난 라모스는 이미 아키노의 친위세력 라반(인민의 힘)그룹과 일부 LDP당원을 결집,새로운 정치단체를 구성한 상태다.
따라서 아키노 대통령의 확고한 입장표명은 당내 친아키노세력이 라모스주위로 모여드는 신호탄이랄 수 있다.
그러나 미트라진영이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당내 대부분의 세력이 여전히 당의 공식결정은 존중돼야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다 아키노를 반대하던 여권내 일부세력과 재야정치인들이 아키노의 후보지명을 분기점으로 삼아 미트라와의 연대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아키노의 후계지명을 계기로 집권세력이 양분됐음은 물론,정치권의 헤쳐모여까지 한꺼번에 진행된 셈이다.
라모스가 비록 아키노 대통령의 지지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오는 5월11일에 실시될 대통령선거에서 낙승하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필리핀 독재의 상징이었던 무자비한 계엄령의 주역이었다는 비난이 라모스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라모스는 지난 71년부터 10년간 국립경찰대장을 지내면서 사촌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명령을 받아 민주인사의 구금·고문에 앞장섰던 전력을 갖고 있다.
라모스가 마르코스집권말기에 발생한 반란에 재빨리 가담,86년의 피플파워를 성공으로 이끌고 아키노집권기간에 발생한 7번의 쿠데타를 진압한 공이 있음에도 불구,반라모스세력이 만만치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악어사냥꾼·목장인부 등을 전전하며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뒤 신문기자·직업외교관을 거쳐 정치에 입문한 미트라는 대화와 타협의 명수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국민적 인기가 아직 미미하고 여권이 분열돼 있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출마를 공식선언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미망인 이멜다도 마르코스시절의 집권당인 신사회운동(KBL)을 중심으로 활발한 유세활동을 벌이고 있다.
아직도 필리핀농촌사회를 중심으로 마르코스의 지지기반이 뿌리깊게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멜다의 당선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밖에도 최근 야당으로 변신한 자유당의 호비토 살롱가 전 상원의장,반아키노기치를 내세운 국민당의 살바도르 라우렐 부통령,아키노 대통령의 사촌으로 엄청난 재력을 갖춘 예두아르도 코후앙코등이 대통령출마를 선언했으나 당선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과두정치의 타파」를 외치며 출마한 인민개혁당의 미리암 산티아고 전 농지개혁장관(46·여)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나 자금과 조직이 미약한 실정이어서 부패한 필피린의 정치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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