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인구억제책 포기했나(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부는 수도권인구억제 정책을 아예 포기해버린 것인가. 80년대 중반이후 해마다 각종 규제를 하나씩 둘씩 해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기존의 인구집중 억제책이 잘못된 것이라면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에 따르면 그것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아직도 그 정책때문에 제한을 받고 있는 시실이나 토지는 허다하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이유,저런 사정으로 규제나 제한을 하나씩 둘씩 풀어 수도권인구 억제정책에 껍질만 남게되어 버렸다는데 있다.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얼마 안가서 억제정책은 빈 껍데기만 남을 전망이다.
이제는 수도권 인구억제시책을 새로운 기준에 따라 재정비할 때가 되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마련된지도 10년이나 되어 여건도 크게 달라진데다가 무엇보다 너무도 많은 예외와 제한완화가 실시돼 정책존립의 기반인 보편성과 일관성을 상실했다. 그럼에도 현 정책을 그대로 고수할 경우 실효도 없으면서 형평만 어그러지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수도권 인구억제시책을 무력하게 한 것은 자연적인 사회변화 추세라기 보다는 정부 스스로의 정책 때문이었다. 신도시 건설사업이 그렇고 이공계 대학의 입학정원 증원이 또 그렇다. 그 하나하나에는 나름대로의 타당성과 긴박한 필요성이 있지만 인구억제시책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정책결정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건의 변화,사회의 새로운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정책을 한치의 변경도 없이 밀고 나가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여건과 상황이 바뀌어 꼭 제한을 풀 일이 있으면 풀어야 한다.
그러나 보편성과 일관성은 있어야할 것이 아닌가. 따라서 이 시점에서 새로운 기준과 정책의지로 정책을 재정비하여 실효성있게 정책을집행해나가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현재 수도권인구억제정책이 지닌 문제점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그것이 서울중심의 시책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서울의 시설이나 인구를 억제하는 것이 억제정책에 도움이 될 것 같지만 그것이 서울은 벗어나되 수도권에는 그대로 머문다면 아무런 효과도 없다. 오히려 그로인해 교통수요 등만 커져 수도권의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수도권밖으로의 이전이 어렵다면 오히려 현 상태로 두는 쪽이 나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수도권지역의 기존인구나 시설에 대한 각종 제한조치보다는 새로운 인구나 시설의 유입을 막기 위한 정책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 효과적임에도 실제로는 반대라는 점이다. 수도권으로 집중되려는 시설이나 인구를 그 지방에 그대로 정착시키는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 이에는 투자와 제도적 혜택이 필요하겠으나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지방자치제의 실시는 그것을 위한 좋은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우대조치로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수도권 인구집중 억제의 효과적인 수단이란 인식아래 새로운 정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