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간호사 '전문직 쿼터' 못 받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미 FTA의 손익계산서를 뜯어보면 아쉬움도 묻어난다. 협상 초부터 정부가 한.미 FTA의 추진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들이 상당수 빠졌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 시민들의 생활이나 기업체의 이익과 직결된 사안들도 적지 않다. FTA를 통해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보겠다는 정부의 의도도 알맹이가 빠진 대목이 많다.

◆ 전문직 비자쿼터=의사.간호사 등의 취업 문제가 걸려 있어 관심이 많았던 부분이지만 반영되지 못했다. 현재 미국 병원들은 많은 해외 간호사를 필요로 하고 있지만 9.11 테러 이후 미국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지면서 한국인들 취업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열린우리당은 27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에게 제시한 '반드시 얻어야 할 5가지 사항'에 이 문제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미국은 비자문제가 자국 의회 권한임을 내세워 들어주지 않았다. 특히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 협정문에서는 대부분 전문직 비자쿼터를 명시해 왔다는 점 때문에 더욱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미국은 캐나다와의 FTA에서 쿼터 제한을 완전히 없앴고, 멕시코(5500명).칠레(1400명).싱가포르(5400명) 등 대부분 전문직 비자쿼터를 인정해 준 바 있다.

◆ 무역 구제=협상 초기부터 한국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FTA협상전략 문건 유출 파문 등을 겪으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미국은 개발도상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섬유산업과 철강산업 등을 보호하기 위해 반덤핑, 상계관세 등의 무역 구제조치를 수시로 꺼내들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정부는 협상 초기부터 15가지 무역 구제 개선안을 강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국내법 개정 사항'이라는 이유를 내건 미국 측의 거부로 우리 측의 공세는 한풀 꺾였다. 결국 '비합산 금지(덤핑 판정에 의한 산업피해 평가시 중국 등 다른 국가들로부터 수입된 동일 물품으로 인한 피해도 합산해 평가하는 것 금지)' 등 알맹이가 빠졌다. 법적 근거가 없는 임의단체인 무역구제협력위 설치에 합의했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 서비스 시장=이 분야에서 양국은 한국의 88개 업종과 미국의 19개 업종을 시장 개방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협상 타결을 위해 덜 주고 덜 받는 식의 딜이 이뤄진 것이다. 특히 관심이 컸던 한국의 교육과 의료 등 핵심 서비스 시장은 일찌감치 개방에서 제외됐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달 "한.미 FTA로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리고 일자리를 만들어줄 욕심이었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 개성공단=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는 결국 '빌트인 방식'으로 봉합됐다. 북.미관계나 북 핵문제 해결 정도에 따라 나중에 다시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는 남북 평화를 위해 정부가 욕심냈던 부분이기도 하다. 앞으로 있을 개성공단 분양 때 악영향이 우려된다.

윤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