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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정거장·도서관 소장책·스포츠 스타·인공위성·박물관 소장품 ″딴살림〃옛 소공화국들|재산 상속권분쟁 치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소련해체로 제각각 딴살림을 차린 옛 소련공화국들이 「상속재산분배」를 놓고 신경전을 거듭하고 있다. 소련외채의 분담상환문제에 대해서는 한푼이라도 덜 부담하기 위해 티격태격했던 모습과는 전혀 판이한 제몫찾기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연방은 소련의 권리·의무를 승계한 종손임을 내세워 핵무기 등을 포함한 모든 연방재산을 독식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그렇다면 외채상환의무도 혼자 짊어지라』는 등의 반발에 막혀 어쩔 수없이 재산분배협상을 벌이는 실정이다.
양국은 최근 흑해함대 관할권을 반분하기로 합의, 일단 위기를 넘겼으나 구체적 세부사항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또다시 격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독립국가연합을 결성, 희미하게나마 과거 한 식구였다는 흔적을 남긴 옛 소련공화국들은 일단 지하자원을 포함한 부동산에 대해서는 속지주의원칙에 따르기로 합의했으나 동산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컨대 소련이 세계최대라고 자랑해온 모스크바소재 레닌도서관의 경우 러시아는 도서관건물은 물론 3천4백만권에 달하는 소장도서까지「상속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다른 공화국들은 책만큼은 저자나 출판사등의 소속공화국에 따라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소재 에르미타주박물관이나 역시 세계적이라는 평판을 얻고있는 모스크바소재 트레차코프미술관 등의 소장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유명운동선수 또는 발레리나 등 예·체능계스타들도 포기할 수 없는 재산목록에 들어가 있다. 장대높이뛰기 종목에서 무려 28차례나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우크라이나출신의 세르게이 붑카 선수를 「회수」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정부가 안간힘을 쏟았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뭐니뭐니해도 흥미를 끄는 것은 우주공간에 떠있는 우주정거장과 인공위성들을 둘러싼 러시아와 카자흐의 상속권분쟁이다. 특히 지난86년 발사된 우주정거장 미르는 지난해 9월 소련외채총액의 3분의1이 넘는 3백억달러에 미국에 팔린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로 값나가는 재산이어서 양측이 양보 없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미르개발에 소요된 인적·물적 자원과 기술자체의 소유주임을 이유로「당연한 상속」을 주장하고 있으나 카자흐는 발사기지인 바이코누르코스모드롬이 자국영토에 있음을 들어 이에 반발하고 있다.
한편 소련해체 7개월 전인 지난해 5월부터 미르에서 연구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는 알렉산드르 볼코프 대령과 우주과학자·세르게이 크리칼료프는 최근 조국 아닌 조국 독립국가연합으로 보낸 신년메시지를 통해 『우주활동이 과학정보 뿐만 아니라 외화벌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곁가지 소유권분쟁을 떠나 우주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구 소련은 애당초 철저한 분업원칙에 입각해 경제를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어느 공화국이든 상호보완 없이는 실질적 분가가 어렵게 돼 있다.
따라서 도저히 한 살림을 못하겠다고 서로 등졌다가 냉엄한 경제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독립국가연합이라는 간판 아래 머리를 맞댄 옛 소련공화국들의 제몫 찾기 경쟁은 독립국가연합 역시 「애정 없는 결합」에 지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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