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리에 '콘서트밸리'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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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변에 있는 ‘왈츠앤닥터만 커피박물관’에서 열린 콘서트를 찾은 주부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첼리스트 홍성은 교수의 연주를 듣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음악 감상이 취미인 이종윤(54.여.서울시 수서동)씨는 24일 차를 몰고 북한강변 드라이브에 나섰다. 행선지는 경춘가도 변의 가일미술관(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삼회리). 미술관에선 이날 피아노 5중주의 선율 속에 성악가 김형수(베이스)씨의 노래가 울려 펴졌다.

이 미술관은 2003년 5월 개관 이후 매월 콘서트를 열고 있다. 현재까지 연 음악회가 50회를 넘는다.

이씨는 4년째 이 '미술관 음악회'의 단골이다. "자주 오다 보니 여기 무대에 선 음악인들과도 친분이 생겨 연락을 주고받아요. 그림 보고 음악 듣고 드라이브도 즐기니 일석삼조죠."

◆ 미술관의 대변신=경기도의 북한강과 남한강변이 '콘서트 밸리'로 변신하고 있다. 수려한 강변에 자리 잡은 미술관.갤러리.박물관들이 정기적으로 콘서트를 열고 있다. 가일미술관 외에 서호미술관, 왈츠앤닥터만 커피박물관, 엘렌킴머피갤러리 등이 현재 매월 혹은 매주 콘서트를 연다. 이외에 갤러리 아지오와 닥터박갤러리가 올해 중 '콘서트 밸리'에 합류한다. 1990년대 붐을 이룬 미사리 등지의 통기타 라이브 문화가, 2000년대 들어 미술과 음악을 함께 즐기는 콘서트 밸리로 '업그레이드'한 셈이다.

무대에 서는 연주자들의 수준도 정상급이다. 65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피아니스트 한동일씨, 현대 재즈의 거장으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사토 마사히코도 지난해 가일미술관에서 연주했다. 첼리스트 장한나의 어린 시절 스승이었던 홍성은(48) 단국대 교수도 2일 커피박물관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홍 교수는 "작은 공간에서 관객들과 대면해 연주자가 직접 해설을 하고 연주하기 때문에 청중의 호흡이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게 이곳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가일미술관의 강건국(63) 관장은 "고객 중 70% 이상이 단골이며 주로 서울 강남과 분당.일산에 사는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와 주부들이 찾는다"고 전했다.

◆ 연주회도 파격=서호미술관은 매월 한 차례 새 전시회가 시작하는 날에 맞춰 '미술이 있는 음악회'를 연다. 이날은 작품이 걸려 있는 전시장에 150개의 의자가 놓인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나면,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이어진다.

콘서트 밸리의 음악회에는 '이런 파격'이 많다. 피아니스트 한동일씨는 지난해 눈을 감은 채 바흐의 곡을 연주했다. 관객과의 소중한 만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커피박물관의 음악회는 관객의 나이를 제한하지 않는다. 예술의전당 같은 공연장은 클래식 콘서트의 경우 초등학생 이상만 입장할 수 있다. 박종만(48) 커피박물관 관장은 "이런 곳에서 거부한다면 어린이들이 어디서 클래식 공연을 듣겠느냐"고 반문했다.

◆ 새로운 '문화 커뮤니티'=연주회를 전후해서는 다과회와 와인 파티가 열린다. 이 자리는 단골 관객들이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고, 연주자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사교의 시간이 된다. 콘서트 밸리에서 연주를 듣고 와인 파티 등에도 참여하는 비용은 1만5000~2만원이다.

음악평론가 탁계석(54)씨는 "콘서트 밸리는 관객들에게 미술과 음악을 한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연주자와 관객이 소통하는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임종성(65.미술디자인) 삼육대 교수도 "서울에서 가까운 경치 좋은 곳에 있는 갤러리에서 다양한 문화 공연이 펼쳐지면서 미술에 대한 저변이 확대되고 관객들의 만족도도 높아지는 만큼 앞으로 이 같은 변신은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익진.성시윤 기자 <copipi@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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