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통령 “증인출석” 해프닝/김석기 사회1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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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성사여부와 발언내용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 온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법정증인 출석문제가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지난해 12월28일 열린 장세동 피고인의 12차공판에서 변호인측이 낸 전씨의 증인신청을 담당재판부가 흔쾌히 받아들일 때만 해도 전씨증언이 실제적인 진실발견을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비춰져 신선감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17일로 예정된 증언날짜가 다가오자 검찰·변호인 등은 웬일인지 「짜맞춘듯」 재판연기 움직임을 보이더니 결국 검찰의 재판연기요청을 빌미로 재판부는 다음달 14일로 공판을 미루었다. 이에 화답하듯 변호인도 재판부가 공판연기 결정을 하기직전 부랴부랴 연기신청을 내는 어색한 모습을 보였다. 변호인측은 아직까지 『전씨가 증언을 자청한 마당에 증언철회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공판연기 신청을 냄으로써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게 됐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 전씨에 대한 증인신청은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고 장피고인의 무죄를 유도하려는 「시위용」 내지 「엄포용」이 아니었느냐는 의심을 사게 됐다.
검찰은 재판연기신청 이유로 「답변준비 미비」를 들고 있으나 문제된 부분이 그동안 공판과정에서 쟁점이 됐던 사항이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으며 재판지연으로 인한 시간벌기와 궁극적으로는 전씨증언철회를 겨냥한 것이라는게 법조계 주변의 분석이다.
정정당당한 법정대결이 불가피하다는 외형적인 태도와는 달리 내심으론 안해도 될 증언을 자청해 평지풍파를 일으키려는 전씨측을 못마땅하게 여겨온 검찰이 시간적 여유를 갖고 증언 저지를 유도하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이 전씨 증언을 무산시키려는 숨은 의도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검찰차원의 순수 사법적인 고려보다 정치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뜻이 숨어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청와대등 권력 핵심부가 지난해말의 6·29선언 주체시비,이달초 정주영씨의 「청와대 정치자금제공 폭로」로 가뜩이나 곤경에 처한 터에 전씨마저 증언을 통해 돌출발언을 하게 된다면 심각한 파문을 몰고올 것이라는 정치권의 지적이다. 특히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나름의 판단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검찰이 「외풍」을 의식했거나 정치적 타협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공판연기신청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어쨌든 묵계설·사전 교감설 등 정치적인 용어가 난무하고 있는 전씨증언이 무산될 경우 전씨증언을 통해 나올 수도 있었던 「역사적 발언」을 들을 수 없게돼 개운찮은 뒷맛을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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