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박헌영-김일성 5차 회동 (2)|"여운형 포섭 공작" 미군정에 맹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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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박헌영-김일성의 회동이 거듭될수록 권력의 축은 점점 더 김일성으로 기울어져 갔다.
현안 논의가 평양에서 전개됐다는 것도 그렇지만 회의 내용도 「박이 김의 의견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형국으로 돼갔다.
토론은 있었지만 결론은 사실상 김일성의 뜻대로 됐다. 김일성의 뜻은 소 군정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박헌영의 최종 월북 (46년10월)을 몇 개월 앞두고 열린 5차 회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북조선공산당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벌어진 여운형에 대한 김일성과 박헌영의 입씨름은 좌 우 합작 지지 여부에 대한 논란으로 번졌지만 결론은 김일성의 의견대로 됐다.
전 북한 고위 관리 서용규씨의 증언.
『김일성은「미군정이 좌우 합작을 조정해 공산당을 고립시키고 우익세력에서는 이승만을 적당히 조종해 궁극적으로 중도 좌파, 중도 우파를 중심으로 하는 단독 정부를 세우려 한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공산당이 그렇다고 좌우 합작 전체를 부정해서 중도 좌파나 중도 우파들을 잃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김일성은 「여운형의 얘기대로 김규식도 조선 사람이고 오랫동안 독립 운동을 한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발로 차버릴게 아니라 하나라도 우리편으로 만들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박헌영은 여운형의 의도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종내에는 김일성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박헌영은 임시 정부 수립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좌우 합작을 하고 예상되는 미군정의 간섭이나 조정에서 벗어나도록 조선공산당이 도와야한다는 김일성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박이 이처럼 김일성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은 김이 소 군정의 지지를 받는 실세였기 때문만이라기보다 상무위에서의 비교적 솔직한 의견 교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마리는 여운형의 동생 여운홍이 만든 사회민주당으로 이야기가 옮아가면서 확인이 됐다.
서씨의 증언.
『상무 위원회에서 이남에서 올라온 각종 정보를 종합해서 집중 분석한 결과 미군정이 여운형을 포섭하기 위해 공작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몽양 (여운형의 호)의 동생 여운홍의 움직임이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여운홍은 당시 사회민주당을 만들었습니다. 여운홍이 형이 만든 인민당에 있다가 나와서 당을 새로 만들었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들을 가졌습니다.
상무 위원회는「미군정이 인민당을 해체시킨 뒤 여운형을 동생의 당으로 가도록 만들려는 계산이 깔려있다」고 봤습니다.
그런 분석이 가능했던 것은 고급 정치 공작원인 성시백을 통해 들어온 정보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박헌영은 모르고 있었지만 미군정이 여운홍에게 자금을 대줬다는 자료를 성이 입수했던 것입니다.
김일성 측이 여운형 주변 움직임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을 내놓자 박헌영도 여운형과 나름대로 유지한 관계를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서씨의 증언.
『역시 미군공의 공작을 둘러싼 일입니다. 박헌영은 「미군정이 자신과 여운형의 사이를 떼어놓으려는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말했습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미군정이 적당한 방법으로 몽양이 아베 총독과 밀약을 했다는 사실을 폭로하여 몽양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고 이를 박헌영이 한 짓으로 꾸민다는 것」이었지요. (『여운형 전집』발간 대표간사 여현덕씨에 따르면 아베 총독과의 밀약은 44년 6월 아베 총독이 중국과의 교분이 두터운 여운형에게 『일본이 중국과 화해하고 싶으니 교섭에 중간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여운형은 자신이 이끌고 있던 건국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아베와 협상을 했던 것을 가리킨다.)
박헌영은 이를 여운형과의 사이를 나쁘게 하려는 미군정의 정치적 음모라고 봤습니다. 자신과 여운형을 갈등 관계에 빠뜨려 공산당과 인민당을 분리시키고 종국적으로 좌익 세력 결집체인 민주주의 민족 전선 (민전)을 와해시켜 여운형을 미군정 쪽으로 끌어당기려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박헌영은 미군정이 여운형에게 귀띔을 하기 전에 이 같은 정보를 사람을 놓아 여운형에게 전했습니다.
메시지 내용은 「미군정이 적당한 방법으로 일제 때 아베 총독과 당신이 조선을 팔아먹기 위한 밀약을 했다고 공산당이 폭로한 것으로 만들어 당신을 모해하고 정치적으로 매장시키려 한다는 정보가 있다.
아마도 미군정이 우리와 당신을 갈라놓기 위해 수작을 하는 것 같으니 부디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메시지가 여운형에게 전달된 뒤에 미군정이 여운형에게 「공산당이 당신의 비행을 폭로하고 다닌다」는 귀띔을 한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그런 정보를 알고 있던 여운형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상무위는 『박헌영이 서울로 돌아간 뒤 여운형과 더욱 관계를 발전시키도록 노력한다』는 건의성 결론을 내렸다.
상무위는 또 여운형을 둘러싼 미군정의 이같은 움직임이나 좌우 합작에 대한 미군정의 적극 개입 같은 것 (미군정 정치 고문 버치의 집에서 좌우 합작 첫 회의를 연 것을 가리킴) 들이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과 연관이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일단 좌우 합작 문제에 대한 입장 조정이 끝난 뒤 당시 중단 상태에 머물고 있는 미-소 공위에 대한 대책 토론을 시작했다.
서씨의 증언.
『상무 위원회 회의는 이승만이 46년6월초 정읍에서 한 단독 정부 수립에 관한 발언은 미군정이 그를 내세워 미-소 공동 위원회를 깨버리고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미군정이 신탁 문제가 잘 해결이 안되니까 이승만을 후원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주고 한편으로는 공산당을 탄압해 결국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는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한 신호탄으로 보았던 겁니다.
따라서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남북 모두에서 미소 공동 위원회 재개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습니다.
미-소 공위를 재개해 임시 정부 수립 문제를 다시 논의한다는 방침이었습니다.』

<특별 취재반>
(북한부) 김국후 차장
안희창 기자
유영구 기자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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