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방을 극복하는 마음|조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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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힘든 입시 준비 끝에 시험을 치르고 마음졸이던 학생들의 당락이 결정되어 희비가 엇갈리는 요즈음 나는 철야 기도예배를 마치고 오는 길에 지난달에 맛본 낙방의 고배를 새삼 되새긴다.
지난해에 나는 7개월간을 10권 이상의 책과 씨름하며 공인중개사 시험준비를 했다. 중간의 2개월은 허리·다리에 통증이 와 침을 맞으며 누워있었고, 시험전주에는 큰아들 맞선을 보는 등 어렵고 큰 일이 계속돼 왔지만 결석 한번 않고 노량진에 있는 학원에 다니며 최선을 다해 깊고 넓게 공부했다.
시험당일은 날씨도 추웠고 긴 시간 많은 문제를 풀다보니 무척 지쳤지만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므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집에 왔다.
시험 잘 쳤느냐는 가족들에게『자신은 없지만 최선을 다했으니 당락에 관계없이 만족한다』고 말했지만 은근히 턱걸이라도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50·8대 1이라니. 어마어마한 경쟁이었고, 시험문제 부정유출이란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긴 시험이라 당락에 초월할 줄 알았던 내 마음이 그렇지 못한 것을 알았을 땐 또 한번 놀랐다.
그 후 나는 은연중 내가 정말 최선을 다했을까 하는 죄책감이 불쑥불쑥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큰애 결혼 때문에 정신없다가 결혼도 끝나고 그 애들이 제집을 찾아 떠난 후 허전한 마음과 마음에 자리잡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것이 한데 뭉쳐 가슴을 짓눌러왔었다.
그날 밤 나는 터벅터벅 집으로 오고 있었는데 큰 숨을 내쉬고 캄캄한 하늘을 쳐다봤을 때 하얀 첫눈이 소리 없이 내려와 내 얼굴을 때린다. 차가운 눈의 감촉은『너, 정신차려』하는 것 같아 재빨리 머리를 털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나는 또 일어서야지. 무언 가에 도전해 가슴에 남은 모든 앙금을 걸러버리고 새로운 어떤 희망으로 가득 채워야지.』 <서울 동대문구 전농 1동 402의 2 27통 4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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