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노인정치」막내린다/등소평 입원이어 진운·이선념등 요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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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장그룹 목소리 높여 권력투쟁 올듯
중국의 노인정치시대가 마침내 막을 내리고 있다.
중국특유의 「인의 정치」를 주도해온 8순고령의 「8대장로」들이 지난해 초부터 뚜렷한 쇠미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지난해말부터 속속 병석에 눕고만 것이다.
때문에 현재 중국은 이들의 공백으로 인한 행정마비와 인사부재가 잇따르는 등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와병의 첫 테이프를 끊은 장로는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등소평·88)이다.
90년대들어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진 등은 지난해 10월 지병인 전립선염이 악화돼 결국 입원하고 말았다.
등은 현재 당창건 기념일이나 당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같은 비중있는 공식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만큼 건강이 쇠약해져 있다.
등의 뒤를 이어 왕전(왕진·84)국가부주석,리센넨(이선념·83) 정치협상회의주석,펑전(팽진·90) 전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차례로 요양에 들어갔다.
특히 등의 강력한 라이벌인 보수파 거두 천윈(진운·87) 중앙고문위원회주임마저 요양중인 것으로 알려져 중국정치의 어금니와 앞니가 모두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팽진은 지난해 11월 뇌혈전으로,왕진은 호흡기질환으로 각각 병세가 위중한 상태다.
다만 진운은 추운 북경을 피해 고향부근인 절강성 항주에서 요양,병세가 비교적 가벼운 상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은 흔히 「팔노치국」이라고 불려질 정도로 8순을 넘긴 8인의 원로혁명가들이 실권을 쥐고 있다.
중요사안은 이들 장로들의 결재 없이는 어떤 일도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
8장로중 양상쿤(양상곤·85)국가주석,보이보(박일파·84) 중앙고문위원회부주임 및 고 저우언라이(주은래)총리 미망인 덩잉차오(등영초·90)여사등 3인을 제외하고 모두 병석에 누워버린 것은 극히 드문 사건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들 장로들의 잠정 부재가 그대로 영구은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데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중국은 전례없는 대규모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89년 6월 천안문사건직후 등소평은 『사건이 지금 터진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아직은 우리 원로들이 건재하기 때문이다』고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이들 장로들의 부재가 길어질 경우 당기능정지상태의 장기화를 원치않는 소장그룹들이 왕권양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 중국정치는 큰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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