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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 정서공해|미의 불건전한 세태 마구잡이 침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미국의 잘못된 요즘 세태를 담은 영화들이 청소년 관객들의 정서를 병들게 한다는 여론이 높다.
최근 국내에서 상영중인 미국영화를 보면 지금껏 말썽을 빚고 있는 폭력·마약 문제와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즉 미국 사회에 만연된 미혼동거·이혼·간통·10대의 부랑 등 건전 질서에서 이탈된 행위들이 자연스럽고도 정상적인 것처럼 그려져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범죄세계의 폭력이나 이에 대응하는 권선징악 식의 또 다른 폭력은 단순오락, 또는 공격심리의 대리 배설이라는 최소한의 변명여지라도 있지만 가정·사회의 가치체계 자체를 무시하는 이 같은 미국영화 풍조의 무차별 침투는 관객개인은 물론전체 사회질서의 기저를 은연중에 좀먹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더욱이「폭력영화」는 공연윤리위원회의 관람등급 심의 등으로 제재가 그나마 가능하다고 하나 이 같은 영화는 영화의 전체 성격과는 상관없이 보통사람들의 일상사로 그려져 있어 제재할 방법조차 없게돼 있다.
가령 보통사람들의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공포상황을 다룬『퍼시픽 하이츠』는 한번쯤 볼만한 영화지만 선량한 남녀 주인공이 미혼인 채로 동거하고있다.
또 이탈리아의 도시 게릴라「붉은 여단」의 테러를 그린 사회물『지옥의 일요일』에서는 유부녀를 지극히 사랑하는 주인공이 우연히 접촉한 다른 여자와 거리낌없이 정사를 벌이고있다.
유부녀를 사랑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특수상황에서 다른 여자와 대번 동침하는 것은 요즘 미국 성 풍속의 한심한 일면을 반영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폭력물」로 간주되는『마지막 보이스카웃』에서도 간통현장을 들킨 아내가 오히려 남편에게 큰 소리를 치고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
『할리와 말보로 맨』의 두 주인공은 사는 의미는 알려고 하지 않은 채 부랑배로 떠돌다 아는 사람의 술집이 빚 때문에 넘어가려 하자 은행을 터는 영웅담으로 그려져 있다.
또 은행털이 갱단을 쫓는 수사관의 이야기인『폭풍 속으로』에서는 경찰과 갱이 우정 비슷한 교감을 나둬 가치관 형성이제대로 안된 청소년에게는 선악의 구분이 혼란시 되는 위험한 생각을 심어주고 있다.
얼마 전 상영이 끝난『분노의 역류』는 직업관·형제애·부부문제 등을 적절히 다룬 수작으로 꼽히지만 이 영화에서도 별거중인 아내가 남편이 보는 앞에서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문제는 이같이 파행적인 삶을 꾸려 가는 사람들이 대개 심성 착한 사람들로 그려져 있어 후기 산업사회의 병적 징후를 앓기 시작한 한국사회, 특히 청소년의 가치혼란을 부채질하고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영화 직배가 정착돼가면서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이 한국극장 장악을 위해 경쟁적으로 물량공세를 펴고 있어 청소년오염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평론가 김종원씨는『미국사회의 불건전한 세태가 마구잡이로 침투하는 것을 막으려면 영화관람 등급방침을 현재의 연령별 규제보다는 부모 또는 보호자의 동행 하에 입장가식의 심의로 고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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