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라운지] 인천공항에 21㎞짜리 '거미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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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인천공항에는 거대한 '거미줄'이 있다.

이 거미줄은 길이만 무려 21㎞다. 단일 건물로는 국내 최대라는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건물의 가로가 1㎞가량이니 20배가 넘는 규모다.

바로 인천공항의 수하물처리시스템(BHS.Baggage Handling System) 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시스템은 여행객이 항공사 카운터에서 탑승 수속을 하면서 가방을 맡기면 이를 해당 비행기까지 자동 운반해 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짐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와 각종 분류장치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마치 거미줄을 연상시킨다는 데서 붙은 별명이다.

인천공항 관계자들은 종종 "하루 하루가 거미줄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인천공항의 경우 BHS는 지상 3층에서 지하 1층까지 두루 연결돼 있다. 가방은 이렇게 연결된 컨베이어 벨트 위에 실려 운반되면서 X선 검사 등 보안검색을 거친다.

이후 가방에 붙어 있는 인식표에 따라 자동으로 행선지별로 분류, 해당 항공기에 실릴 짐을 모으는 곳까지 옮겨진다. 여기까지가 BHS의 몫이다. 그 뒤에는 현장조업 요원이 그 짐들을 해당 비행기로 가져가 싣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컴퓨터를 통한 자동 분류 과정에서 조금만 오류가 생겨도 가방이 엉뚱한 비행기에 실린다는 것이다. 미국으로 가야 할 짐이 유럽으로 날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밀려드는 승객들의 짐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는 데다 오류의 원인을 찾느라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공항이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 공항을 지을 때나 기존 공항을 운영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BHS다.

실제로 미국의 덴버공항은 1993년 10월 개항 예정이었으나 BHS에 문제가 생겨 1년 정도 개항을 늦추기도 했다. 홍콩의 첵랍콕 공항도 98년 문을 연 뒤 이런 문제로 큰 혼란을 겪어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당시 피해를 본 승객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줄을 이었다. 인천공항도 2001년 초 개항을 앞둔 시험 운영에서 시스템이 잦은 오류를 일으켜 개항 연기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내년 7월이면 인천공항에는 현재의 세 배가 넘는 거미줄이 더 생겨난다. 여객터미널에서 900여m 떨어진 곳에 새로 지은 탑승동이 문을 열기 때문이다. 탑승동은 여객터미널만으로는 공간이 부족해 승객들이 비행기를 타고 내릴 용도로 추가 건설한 것이다.

이 탑승동과 여객터미널을 연결하는 컨베이어 벨트와 각종 시스템의 길이만 무려 67㎞다. 기존 시스템과 합하면 88㎞나 된다. 길이가 길어지면 그만큼 시스템에 오류가 생길 확률은 높아진다. 인천공항이 이처럼 거대한 거미줄과의 전쟁을 어떻게 이겨낼지 관심사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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