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우선순위 정상회담보다 BD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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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북한에 특사로 보내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해 막후에서 관여했던 이호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28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북 특사는 청와대가 먼저 제안한 것이 아니라 북측이 특사를 원한다는 얘기가 여러 통로로 들어왔었다"며 "이에 따라 대통령이 특사를 보내는 문제를 논의했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대통령 특사의 의제는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문제였다"며 "이해찬 전 총리가 그 특사로 검토됐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남북 정상회담 논의도 열려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특사의 목적은 북핵 위기 상황을 타결하는 데 집중됐다"고 설명했다.

대북 접촉 과정과 관련해 이 실장은 "내가 자기에게 전화해 대북 접촉 주선을 부탁했다는 내용의 이른바 비망록을 폭로한 권오홍씨와는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6자회담 복귀와 핵 포기 의사를 갖고 있으며 남측의 특사를 원한다'는 메시지가 최소한 세 곳 이상에서 접수됐다"며 "이병완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보고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 "북측 태도 알아보라"=노 대통령은 "상황을 파악해 보라. 채널이 신뢰할 만한지, 진짜 북측의 태도는 무엇인지를 알아보라"고 했다고 이 실장은 전했다.

이후 지난해 10월 20일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씨와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이호남 참사를 만난다. 이 실장은 "북측이 쌀.비료 지원 재개 문제를 꺼내고 이 의원으로부터 돈 얘기도 들려 원칙적으로 대응했다"며 "해당 (북측) 통로의 신뢰성 여부도 불확실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이후 안씨는 손을 뗐으며, 북한이 지난해 11월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함에 따라 필요성도 없어져 이 의원에게 '(비선 접촉을) 정리하라'는 뜻을 전했다"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해 그는 "북핵 위기 당시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대해선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이는 미국이 동결한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 문제가 풀리지 않고선 6자회담 재개가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6자회담이 재개된 지금도 BDA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 논의 등이 진행되는 것이 남북 정상회담보다는 우선순위"라고 그는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부의 물밑 대북 접촉이 시작된 계기는.

"모 주간지 기자가 안희정씨에게 먼저 북측과의 접촉을 권했다. 북측도 안씨를 직접 만나고자 했다고 한다. 이후 그 기자가 나에게도 북측의 의사라며 접촉을 권해 왔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북측의 진의를 파악하기로 했다. 안씨와 이화영 의원을 적임자라고 보고 지난해 10월 20일 베이징에서 이 참사를 만나도록 했다. 그런데 성과가 없어 '원칙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6자회담 재개 움직임도 있으니 중단하자'고 했다. 그 후로는 이 의원의 의욕이 강해 방북 등을 추진한 것 같다."

-권씨는 '안씨가 면담에서 정상회담과 특사 파견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했는데.

"권씨의 비망록은 팩트와 자신의 생각이 섞여 있더라. 당시는 정상회담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북핵 위기 타결과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한 대통령 특사를 보낼 수 있다는 논의는 있었다."

-왜 통일부 등 공식 라인을 통하지 않았나.

"나는 대통령과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것이 공식 라인이라고 생각한다. 비서실장은 안보정책조정회의 멤버다. 당시는 특히 외교안보 라인 교체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여기저기 얘기할 수 있었겠나. 신임 국정원장에게는 임명 직후 이런 과정을 보고했다."

-대북 접촉 결과도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나.

"두어 차례 보고했다. 대통령의 반응을 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김성탁 기자

◆ 이호철은 누구=부산대 운동권 출신인 그는 80년대 초 부림사건으로 구속됐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변론을 맡았다. 그 인연을 시작으로 노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첫 보좌관을 맡았다. 이후 줄곧 노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해 왔다. 2002년 대선 승리 후 '386 측근' 중 맏형으로 불려왔다. 정권 출범부터 민정비서관을 지낸 그는 노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치적 동업자'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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