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서 봉변당한 할아버지(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버스기사의 업무가 고되고 짜증난다는건 압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승객에게 좀더 친절하라고 충고했다는 이유만으로 할아버지에게 이런 행패를 부릴 수 있습니까.』
8일 오후 서울 송파경찰서 형사계.
건국대생 김진영군(26·건축과 4년)은 상기된 표정으로 같이 버스에 탔던 양한식씨(68·노동·서울 가락동)의 흙묻은 팔을 감싸쥔채 흥분하고 있었다.
『기사들의 불친절을 보면 버스가 시민의 발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입니다.』
김군이 어이없는 광경을 목격한 것은 8일 오후 2시30분쯤.
학교도서관에 가기위해 성남에서 을지로5가를 운행하는 동성교통 570­2번 버스를 타고 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 정차했을 때였다.
버스에 오른 아주머니가 『이 버스가 화양동 가느냐』고 서너차례 물었으나 40대초반으로 보이는 버스기사는 들은체만체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이를 본 양씨가 화양동행 버스가 맞다고 알려준뒤 버스기사에게 『간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좋지 않느냐』고 점잖게 충고를 했다.
순간 운전기사는 급브레이크를 밟아 버스를 급정거시켰고 양씨는 버스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버스앞에 아무 장애물이 없어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이어 운전기사는 『네가 뭔데 참견이냐』며 양씨를 버스 밖으로 끌어내린뒤 멱살을 잡고 욕설을 퍼부었다.
김군이 참다못해 이를 가로막자 운전기사는 급히 차를 몰아 뺑소니 치듯 달아났다는 것이다.
김군은 이런 운전기사는 처벌받게해야 한다는 생각에 곧바로 양씨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왔다고 했다.
『아들이 자가용 운전사라 아들처럼 생각해 한마디했을 뿐인데….』
그러나 김군과 양씨는 경찰에서도 또한번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사안이 경미한데다 중요한 사건이 많다는 이유로 담당형사가 운전사 소환등 처리를 뒤로 미뤄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양씨를 부축하고 경찰서 문을 나서는 김군의 어깨는 맥이 빠진듯 한층 늘어져 보였다.<남상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