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계 왕위 도전권 뜨거운 삼색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도전자 결정이 임박한 왕위전 본선리그와 곧이어 벌어질 도전기가 올해의 바둑판도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왕위전 추이에 바둑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바둑 4인방」으로 불리는 이창호 왕위, 조훈현 9단, 유창혁 5단, 서봉수 9단은 제각기 지난해의 뼈저린 감회를 지닌 채 올해의 입지를 결정지을 왕위전에서의 일전을 고대하고 있다.
왕위전 본선리그는 조 9단이 5연승으로 선두를 치고 나갔으나 지난 6일 유5단이 1승을 추가 해 5승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참조 왕위전 본선 전적 표).
서봉수 9단은 유창혁에게 일격을 맞아 4승1패지만 조훈현과의 한판에 희망을 걸고 있다.
누가 도전자가 되든 목표는 이창호다.
지난해의 바둑계는 한 마디로 대진군에 나선 이창호와 바둑계 전체의 전면전이었다. 한때바둑계의 모습은 이창호라는 대군에 포위된 외로운 성과 같았고 이창호의 바둑계 석권은 시간문제요, 숙명처럼 보였다.
그러나 15년간 바둑계의「황제」로 군림했던 조훈현은 10월의 국수전에서 극적으로 이창호를 저지했다. 11월의 기성전에서도 이 5단을 꺾어 도전권을 장악했다. 바둑계 강자들은 이때 이후 주술적이며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이창호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바둑계의 1년 전쟁은 이창호가 14개 타이틀 중 6개를 석권하는데서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결전의 시기는 92년으로 넘겨졌다.
세밑의 바둑계는 조훈현과 유창혁의 각축이 치열했다. 두 사람은 기성위를 놓고 격돌해조9단이 현재 2승1패로 앞서고 있고 대왕전(대왕 이창호)에선 유5단이 조9단을 두 번 잇따라 꺾고 도전권을 장악했다. 서봉수는 모든 기전에서 강력한 변수였으나 판도 재편과정에서 가장 소외되고 있다.
이 와중에서 당연히 1위일 것으로 믿어졌던 이창호의 상금을 조훈현이 추월했고 서봉수 자리를 기성전 우승 상금 2천7백만원에 힘입은 유창혁이 차지했다(참조 91년 상금 랭킹표).
이창호는 6관왕이고 조훈현은 5관왕. 바둑 관계자들은 91년 승률 1위(77.4%)인 상승의 이창호 목을「1인자」로 부르고 싶어했지만 상금 랭킹이 발표되자 마음을 돌렸다.『아직은 시기가 안됐다』고 프로기사들은 말하고 있다.
이 같은 미묘한 판도와 아직은 정하지 못한 4인방의 서열이 올해는 분명해질 것이고 그 첫번째 결전장이 왕위전이 될 것이라고 바둑계는 단정하고 있다.
현재 총28국 중 22국이 진행된 왕위전 본선리그는 똑같은 5승이지만 서봉수를 이긴 유창혁 등이 다소 유리하다. 앞으로의 대국순서는 2월중 조-서전이 먼저 열린 다음 조-유전에서 승부를 가르게 된다.
지난해 하반기 최초로 슬럼프(?)를 겪었던 왕위 이창호는 한발 물러나 세 명의 각축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대신 유창혁이 최근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조 사범이 한결 지독해졌어요.』
잇따른 격전 속에서 요즘의 조 9단은 흰머리가 늘어났다. 서봉수 9단은 좋아하던 일체의「놀이」를 끊었다. 조·서 두 사람은 신구의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올해를 건곤일척의 한 해로 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들의「느낌」과「현실」이 왕위전의 남은 스토리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고 이일전이 올해의 판도를 전망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박치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