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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암 이겼다 3인의 투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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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해에는 건강합시다』라는 덕담이 머지않아 『새해에는 암조심합시다』로 바뀔는지도 모른다. 의료보험관리공단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을 찾았던 의료보험환자 중 사망자 4명에 1명꼴 이상이 암으로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행히도 암에 걸렸으나 끈질긴 투병으로 건강을 회복한 사람들의 통계는 없지만 암에 걸려 사망한 사람에 버금가게 암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사람들도 주변에 많다. 암이 이미 상당히 진행됐음에도 불구, 성공적인 투병으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식도암 김필화씨(49)>위 완전히 잘라내고도 건강
공해와 식생활의 변화만이 암을 부르는 것은 아니다. 44년을 청정지역이랄 수 있는 경북 청송에서 살아온 주부 김필화씨(49·서울 양천구 신월1동)가 식도암에 걸린 사실을 안 것은 지난 87년12월이었다.
『먹기만 하면 속이 답답했어요. 골이 왕왕거리기도 하고 토하려는 느낌도 들고요.』
청송의 벽지에서 그때까지만 해도 감기한번 걸리지 않고 살아온 김씨는 너무 오랫동안 속이 답답해 인근 안동의 한 병원을 찾았더니 『암에 걸렸으므로 길어야 6개월쯤 살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김씨는 이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그동안 살아온 「깡다귀」로 남편을 졸랐다. 늦어도 큰 병원에서 죽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고려대병원의 김형묵 교수(흉부외과)를 찾은 김씨는 암이 식도는 물론 위 전체까지 퍼졌지만 『한번 희망을 갖고 수술해보자』는 얘기를 들었다.
88년 봄 식도의 일부를 제거하고 위 전체를 잘라내 장과 잇는 대수술을 받은 김씨는 계속 항암제를 맞으며 투병하다 지난 봄에야 항암제를 끊었다. 몸의 기능이 크게 좋아지고 있다는 담당의사의 판단 때문이다.
『수술 전 사과 한쪽만 먹어도 꼭 얹히곤 했는데 이젠 나물류와 매운 음식을 빼고는 무엇이든 잘 먹게 됐다』는 김씨는 『지금껏 살아있는데는 철저한 치료 외에 남편의 정성도 컸다』고 말했다.
남편 남승규씨는 아내 김씨의 간호를 위해 고향 청송의 논을 팔고 짐을 정리해 수술하던 해 서울로 아예 이사를 온 후 지금껏 아내가 위가 없어 약을 토해내면 또 먹이고, 음식을 토해내면 다시 차려주는 외조의 정성을 다했다.
『식도암에 걸리기 전에는 식도암이라는 얘기조차 못 들어봤다』는 김씨는 『위의 전부와 식도의 일부를 떼어내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아직도 신기하다며 『다소 수술시기가 늦었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자궁암 강민자씨(59)>심한 허리 통증 느껴 병 발견
『여자라는 죄(?)로 자궁암에 걸렸다』는 강민자씨(59·식당종업원)는 현재 4년째 암과 투병중이다.
강씨가 처음 몸의 이상을 느낀 것은 지난 86년 『허리가 빠져나가게 아팠기 때문』이었다,.
일찍 남편을 여의어 홀몸이 됐고 생리에 이상이 있어서 허리가 아픈 것이라고 생각해 동네약국을 찾았던 강씨는 약사의 의심으로 근처 산부인과의원을 찾아갔다가 자궁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20여년째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살아온 강씨는 주위의 도움으로 의료보호증서를 발급 받아 다시 고려대병원 박용균·강재성 교수팀을 찾아갔다.
정밀검사결과 자궁암2기라는 판정이 내려졌지만 강씨는 처음에 『의사가 오진했을 것』이라고 우겨댔다. 중3이던 큰딸이 충격을 받을까봐 말도 꺼내지 않고 몰래 자궁절제수술을 받은 것이 88년 봄이었다.
『남들은 2주일이면 퇴원하는데, 당시 25일씩이나 입원해있자니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가 보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씨는 말했다. 강씨의 입원기간이 비교적 길었던 것은 경과가 다소 좋지 않고 나이가 많았기 때문.
퇴원 후에도 『하필 내가 왜 암에 걸렸나하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강씨는 이왕 이렇게 됐으니 의사의 시시대로 차분히 생활해나가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6개월에 한 번씩 검사차 병원에 가는 것을 정확히 지켰을 뿐더러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한약과 보약도 먹었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거의 병원을 찾지 않던 강씨는 이젠 가벼운 감기에도 꼭 병원을 찾는다. 아직 투병중인 암에 이런 작은 병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주변에서 3년을 넘기면 일단 안심, 5년을 넘기면 아주 안심이라더군요. 이제 3년반을 넘겼으니 오래 살려나봅니다』라며 그는 희망에 차있다.

<위암 김중해씨(57)>중기 때 수술 3년만에 거의 나아
지난 82년 위암수술을 받은 뒤 올해로 10년째 건강한 삶을 유지해 온 김중해씨(57·음식점 서림대표)는 화색이 도는 얼굴에 『웬만한 술도 사양치 않는』 건강한 사업가로 일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가장 흔히 발생하고 사망률 또한 1위인 위암에서 벗어났다 하면 주위에서는 『아주 초기에 암을 발견했겠지』 『어쩌다 재수가 좋았겠기』라며 만의 하나 찾아오는 행운 탓으로 돌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김씨가 암을 의심해 병원을 찾은 것은 『위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느낄 만큼 병이 진행된 상태였다.
『80년 초부터 식사를 하고 나서 소화가 될만하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속이 쓰렸어요. 그러나 내가 하는 일(대형 음식점)의 특성이 제때 밥을 찾아먹기 힘들어 대수롭지 않은 위장병쯤 되겠지 하고 약국에서 약만 몇 번 사다 먹었어요』
그러나 김씨는 「위장법」이 낫기는 커녕 82년까지 계속 악화되자 심각한 고민 끝에 서울대병원 김광복 교수(일반외과)팀을 찾게됐고, 그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당장에 수술을 하자는데 앞이 캄캄하더구만요. 80년대 초만해도 지금과는 달리 암에 걸렸다는 것은 사형선고와 다를 바가 없었거든요.』
김씨의 위암은 중기로 다른 장기로 전이는 안됐으나 근육층에까지 번져 위의 거의 전부를 잘라내야 할 정도였다.
모아놓은 재산도 별로 없고 당시 중·고교에 다니던 3남1녀의 자식들을 생각하자 이대로 죽어서는 안되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수술과정에서 김씨의 위는 거의 거덜나 버렸다. 『의사선생님이 위가 달걀만큼 밖에 남지 않았으니 소화가 잘되는 음식만 먹으라더군요.』
미음→죽→밥으로까지 가는데 2년여가 걸렸다는 김씨는 투병도중에 『재발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사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며 투병 3년째인 지난 85년께야 졸인 가슴이 풀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하루에 담배를 두 갑 피우는 골초였던 김씨는 수술 후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
위암에 걸렸어도 체중변화도 크게 없고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오지도 않았었다는 김씨는 『위에 약간만 이상이 있어도 무조건 병원에 가는 습관이 생겼다』며 조기검진을 강조하고 『주위 사람 중에 자신의 권유로 위암검사를 받은 사람만도 수십명이 넘을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김창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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