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원사 간 『빛깔 있는 책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대원사에서 내는 「빛깔 있는 책들」을 보면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조국이 독립되던 해 국민학교에 들어갔던 나는 지금도 그때 받았던 교과서가 눈에 선하다. 종이가 이른바 「말똥으로 만든 것」이어서 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여기저기 박힌 옹이 때문에 제대로 찍히지 않은 활자도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뒤 우리가 즐겨 읽었던 만화 또한 이와 같았다.
6·25동란 중에 나온 교과서는 이보다 조금 나았다. 종이를 UNCURK(국제연합 한국통일부흥위원회)에서 얻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 뒤에 「원조에 감사한다」는 문교장관의 글이 박혀서 어린 시절이었지만 이를 펼칠 때마다 마음에 한 가닥 그늘이 드리워지고는 하였다.
근래에 들어와 종이는 물론이고 인쇄기술도 크게 발전하였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일본에서조차 경비를 줄이려고 우리 나라에서 책을 인쇄해가는 현실인 것이다.
종이나 인쇄 뿐아니라 전문 디자이너까지 등장해 책의 꼴이 훨씬 좋아졌다. 세련된 멋과 깔끔한 외모를 지니게됐다. 대원사의 「빛깔 있는 책들」은 이 같은 점에서 높은 수준에 오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지난 89년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는 현재 모두 1백17종이나 나왔다. 민속 부문 22종, 고미술부문 28종, 생활문화 부문 44종인데 해마다 40종을 더해 10년 안에 5백종을 내리라 한다. 큰 성과다.
이 시리즈가 여러 차례 상을 받은 것도 그동안의 성과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객관적 증거인 셈이다. 90년에는 한국출판학회상(기획·편집부문), 불교출판문화상(디자인 부문)을 탔다.
또 지난해 2월에는 「기존문고의 틀을 벗어난 참신성으로 한국 출판의 질을 높였다」는 평가와 함께 제31회 한국출판문화상(문고부문)을 수상했던 것이다.
이제까지 나온 장기 시리즈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세종대왕 기념사업회에서 낸 38권의 교양 국사 총서다. 필자가 모두 그 분야의 권위자들이어서 내용면에서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기획물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종이·인쇄·장정 등의 질이 매우 낮아 일반인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하였다. 「빛깔 있는 책들」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한 성공물로 여겨진다.
대원사의 책은 전지 18절 크기에 2백장 분량의 원고와 1백장 정도의 사진으로 꾸며지는 점도 장점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일반 독자의 접근이 쉬운데다 다양한 주제를 소화하기에 편리한 까닭이다. 「짚문화」 「유기」 「민속놀이」 「조상제례」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이미 나온 것 가운데 내용상 간단히 다루어서는 아니되는 것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만 다루면 나열에 그칠 위험이 뒤따르게 되고 자칫하면 독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많다. 이러한 점은 모든 문고판이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 다루되 깊이 있는 책이 되도록 마음을 써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필자를 더 잘 골라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그리고 계약 조건도 크게 바꾸어 좋은 필자들이 책을 내고 싶어할 만큼의 수준이 되어야할 것이다.
한편 대원사는 이 시리즈를 통해 과거의 「읽는 책」을 「보는 책」으로 바꾸겠다는 시도를 보였다. 사진을 많이 쓰고 편집이나 인쇄, 그리고 디자인을 남다르게 하려는 의도가 모두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도는 달성된 셈이다.
그러나 책은 역시 읽어야 하는 것이다. 보는 책의 수명이 얼마나 가겠는가. 미술 관계 서적이나 사진집이 아닌 다음에야 한번보고 던지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좋은 책은 우수한 독자가 만들기도 한다. 88년에 나온 자료에 따르면 한가지 책이 미국에서는 3만8천권, 일본에서는 2만권 이상 팔린데 비해 우리 나라는 4천권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출판사에서 아무리 좋은 책을 내더라도 독자의 관심이 쏠리지 않으면 물거품이 되고 만다.
대원사의 「빛깔 있는 책들」만으로도 작은 도서관을 꾸밀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김광언(인하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