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 생활 속에 스민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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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20주기(周忌)를 맞아 각종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가 태어난 피츠버그뿐 아니라 유럽·아시아 주요도시에서 크고 작은 전시회가 한창 진행 중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0월 인사동 쌈지길의 '앤디 워홀을 만나다 전'을 비롯해 서울대 미술관의 '앤디 워홀 그래픽 전', 갤러리 H의 '앤디 워홀 전'이 바통을 잇고 있다. 리움의 '앤디 워홀 팩토리 전(~6월 10일)'은 행사의 절정을 이룬다. 지난 15일 오픈한 '팩토리 전'은 피츠버그의 앤디 워홀 뮤지엄에서 200여 점의 작품을 공수했다. 저 유명한 캠벨 수프·마를린 먼로의 초상화는 물론, 워홀의 여장(女裝)사진과 초기 드로잉 작품까지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스타일U는 그의 팝아트가 패션·인테리어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 그는 누구인가?
앤디 워홀은 1928년 8월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만화책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던 그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 뉴욕으로 건너가 상업화가로 일하면서 잡지에 게재한 '구두' 삽화로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196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 달러 지폐'와 '캠벨 수프 깡통'그림을 전시하면서 그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다.
앤디 워홀은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재생해냈다. "기계가 되고 싶다(I want to be a machine)"던 그는 말 그대로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내듯 작품을 대량으로 찍어냈다. '팩토리'라 부른 그의 작업실은 신문에 오르내리는 화제의 인물이나 사건을 예술로 포장해 냈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릴린 먼로·마오쩌둥 의 초상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팝아트와 인테리어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팝아트는 디자인의 오랜 전통마저 허물었다. 이는 1960년대 영국 젊은층을 중심으로 전개된 '팝 디자인 운동'을 촉발했다. 실용주의 모더니즘이 대세였던 이전과 달리 소비 위주의 장식적 측면을 강조했다. 한 이탈리아 건축회사는 전통적인 상류 건축문화에 반기를 들듯 아르데코의 모티브와 팝스타의 얼굴, 인조 표범가죽을 융합한 '꿈의 침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미래주의적이고 기하학적인 팝아트 디자인도 엿보인다. 영국의 한 약국은 우주선 분위기를 내기 위해 알루미늄을 소재로 캡슐 모양의 실내장식을 했다. 1968년 상영된 스탠리 큐브릭의 공상과학영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한 의자도 그렇다. 생물체를 연상하듯 부드러운 곡선을 뽐내는 이 의자는 유럽과 미국의 장식미술에 영향을 준 동양의 신비로움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팝아트의 경쾌함, 장난스러움은 소재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인스턴트 라이프스타일'의 등장이다. 대표적 재료로는 단연 플라스틱이 꼽힌다. 합리적 가격, 다양한 디자인과 컬러는 급속도로 대중의 인기를 확보했다. 플라스틱의 발전은 새로운 소재 연구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PVC로 된 투명 비닐에 공기를 넣은 '풍선의자'와 자루 모양의 주머니에 폴리스티렌 알맹이를 채운 '사코'등 아이디어 상품이 속속 출시됐다.
팝아트 이미지는 인테리어에도 소리없이 파고 들었다. 민무늬 대신 패턴이 반복되는 벽지나 패브릭이 공간을 장식했다. 또 포인트 의자나 쿠션이 소품으로 자리잡았다. 마리메코 디자이너 이로 아오카스의 패브릭 '터뷸런트'는 워홀의 '꽃'과 너무나 흡사하다. 침구나 커튼 외에도 꽃 부분만 잘라 액자에 끼우면 그럴싸한 팝아트 작품이 된다. 영국의 세라믹 디자이너 도미니크 크린슨은 일상의 아이템들을 스캐너와 프린터를 이용해 반복 재생해 타일과 벽지에 적용했다. 워홀을 계승하면서 때론 사물을 확대·축소하거나 모양을 조금 변형해 고유의 스타일을 창조하기도 했다. 워홀과 보다 간편하고 직접적으로 소통하고자 한다면 그의 작품 이미지를 고스란히 화병이나 접시·머그컵에 옮겨놓은 로젠달의 '앤디 워홀 시리즈'를 구입하면 된다. 한줌의 꽃향기에, 한모금의 차 속에서 기계가 된 워홀을 만날 지도 모를 일이다.

프리미엄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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