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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준화 깬 교장 리더십… '일본판 옛 경기고' 히비야 33년 만에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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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고교 평준화 정책에 희생양이 됐던 일본 도쿄(東京)의 히비야(日比谷) 고등학교가 33년 만에 화려하게 살아났다. 2001년 나가사와 나오오미(長澤直臣) 교장을 영입한 것이 부활의 서곡이었다. 그는 평준화 틀을 과감하게 깨며 학교 혁신에 나섰다. 우수 교사를 공채하는 동시에 수업시간을 대폭 늘렸다. 학생들의 평가를 통해 시원찮은 교사들은 바로 퇴출시켰다. 학생들의 실력은 쑥쑥 올라갔고, 올해 대학입시에서 그걸 확실하게 입증해 보였다.

◆ 33년 만에 되찾은 영광=히비야고의 올해 도쿄대 합격자는 28명이었다. 지난해(12명)의 2.3배다. 도쿄대 합격자가 20명을 넘어선 것은 1974년 이후 처음이다. 와세다(早稻田).게이오(慶應).조치(上智) 등 이른바 '사립대 빅3' 합격자도 최근 30년 새 가장 많았다. 일본 언론들은 "히비야고가 공교육 특성화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다"고 전했다.

도쿄올림픽이 열렸던 64년 히비야고의 도쿄대 합격자 수는 193명으로 압도적인 전국 1위였다. 졸업생의 절반이 도쿄대에 합격했다. 그러나 67년 지나친 입시경쟁과 고교 서열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학군제, 다시 말해 고교 평준화 정책으로 히비야고의 명성은 바래기 시작했다. 명문 공립고를 선택할 수 없게 된 우수 학생들은 학군제가 적용되지 않던 유명 사립고로 몰렸다. 93년 히비야고에서는 한 명만이 도쿄대에 들어갔다.

2001년 9월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히비야고를 포함한 4개 공립고를 '진학지도 중점 학교'로 선정한 것이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고교 평준화의 부분 철폐였다.

◆ 모든 건 리더십에 달렸다=이때 히비야고는 도쿄도 교육청 출신의 나가사와 교장을 영입했다. 그는 '히비야 르네상스'로 불리는 과감한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무엇보다 일본 공립학교로는 처음으로 독자적인 입시제도를 도입했다. 똑같은 시험으로는 우수 인재를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2002년부터 전국 공립학교에 주5일제 수입이 적용되자 그는 '틈새'를 공략했다. 기존의 '1교시 50분, 하루 6교시'체제를 '1교시 45분, 하루 7교시'로 바꾼 것이다. 수업시간 감소를 그대로 수용했다간 연간 140시간 수업 시간이 줄어들게 돼 토요 수업을 하는 사립교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줄어든 5분'을 메우기 위해 출석도 부르지 않고 쉬는 시간도 점차 1~2분씩 줄였다. 한 주에 한두 번은 방과 후에 두 시간씩 특별수업도 했다. 2005년부터는 여름방학에도 강의를 100개나 개설해 학생들이 따로 학원에 갈 필요가 없도록 만들었다.

◆ 교사 평가제도 밀어붙여=나가사와 교장은 교사들에게도 채찍을 들었다. 2002년 이후 '진학지도 중점 학교'에 허용된 교사 공모제를 십분 활용했다. 조금이라도 열정이 떨어지는 교사는 스스로 학교를 떠나게 했다. 현재 영어.수학.국어 등 5개 주요 과목 교사의 90%는 공개 모집으로 채용한다. 매년 두 차례에 걸쳐 학생들로 하여금 교사들의 수업 내용을 평가하도록 한다. 여기서 낮은 점수를 받은 교사는 학교를 떠나야 한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 히비야고=1878년 '도쿄부 제1중학교'로 개교한 가장 오랜 전통의 도립 명문고. 도쿄 한복판 국회의사당 인근에 있다.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 노벨의학상 수상자 도네가와 스스무(利根川進) 등 쟁쟁한 동문이 정치.경제.문화계에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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