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노사불신 해소돼야 일더하기운동 알찬 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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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정부와 경제계가 추진하고 있는 「일 더하기 운동」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으나 정작 주역이 되어야할 노동계에서는 일부 적극적인 호응이 있는 반면 일부에서는 소극적인 반응이다.
많은 근로자들은 우리경제가 분명 위기상황이며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파국에 이를지 모른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위기극복방안이 정부·경제계의 각성보다 근로자의 근면을 독려하는 형태로 제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새해 들어서도 계속 추진될 이 운동이 근로자들의 적극적인 동참하에 이뤄지기 위해서는 뭔가 새로운 동기부여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 더하기 운동=지난해 11월13일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가 「30분 일 더하기 운동」을 제창한 이후, 같은 달 21일 정부의 「30분 일 더하기, 10% 씀씀이 줄이기 운동」, 다음달 대한상공회의소등 경제5단체의 「5대 10%더하기운동」 결의 등을 통해 범국민적 캠페인으로 등장했다.
이 운동의 골자는 현재 경제위기가 전반적인 사회분위기 이완과 생산·근로의욕 감퇴에서 비롯됐다는 기본 인식하에 우선 산업현장에서부터 「허리띠 바짝 졸라매고 정신차려 일 열심히 하는 풍토」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정부와 경제계에서는 이 운동이 근로자들의 자발적인 협조와 동참 없이는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보고 행정지도·홍보자료 배포 등을 통해 참여를 적극 호소하고 있다.
호응=일부 기업에서는 노조가 앞장서서 이 운동을 전개해가고 있다.
항공화물 취급 및 보관회사인 한국항공은 노조의 발의로 11월28일 「30 더하기 운동」 결의대회를 갖고 실천에 들어갔다.「30 더하기 운동」이란 하루 30분씩 일을 더하는 것은 물론 화물 훼손율 30%감축, 전열기 30분 덜 쓰기 등 생산성 향상·근검절약 캠페인까지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대구세원산업근로자 1백40명은 10월1일부터 토요격주휴무제를 실시키로 노사간에 합의하고도 자발적으로 이를 보류, 토요일에도 8시간씩 일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호응은 사양산업인 섬유·신발업체가 밀집되어있는 부산·대구지역에서는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면=한국노총은 12월 중순 경제계로부터 「일 더하기」운동에 동참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이를 거부했다.
노총은 이 운동이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시키고 있으며 ▲주당 근로시간을 46시간에서 44시간으로 단축시킨 근로기준법 정신에 위배되고 ▲관변 단체 주도로 시작됐다는 점등을 들어 무시한다는 입장이다.
전노협도 『이번 일 더하기 운동은 정부가 선거국면을 앞두고 경제 실정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려는 것』이라며 『이번 운동은 뼈가 휘도록 열심히 일하고도 살기가 더욱 어려워 허덕이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분노와 배신감을 안겨주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현대그룹 노조총연합회의 조성훈 사무차장(37)은 『정부와 경제계가 먼저노동자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지 않는 한 우리로서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고 말했다.
문제점=일을 열심히 성의껏 하자는 것이 나쁠 리 없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경제계와 노동계 사이에 깊게 패어있는 불신감이다.
정부·경제계는 경제위기의 원인을 노동자들의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와 이로 인한 노사대립, 노동자들의 불성실과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 등에서 주로 찾으려 하고 있다. 이번 「일 더하기」 운동에서도 정부 및 기업측의 구체적 실천과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고 노동자들에 대한 지도사항이 주로 논의된 것이 사실이다.
노동계는 집 값·땅값·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투기꾼들은 엄청난 불로소득을 거둬 흥청망청 써대고, 기업인들은 경영합리화나 기술개발은 뒷전으로 돌리고 개인 주머니만 채우는 상황에서 오히려 가장 큰 피해자인 노동자가 정신차려야 할 주 대상이 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 더하기」 운동은 이같은 불신의 벽이 먼저 무너지지 않는 한 알찬 결실을 맺기는 힘들 전망이다. <김동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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