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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주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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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정현 기자

반미주의는 이데올로기다. 미국이 특정 국면이나 장소에서 취하는 행동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 반미주의는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인식의 결과다. 다른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반미주의도 현실을 기술하지는 않는다. 마르크스주의를 떠올려보자. 그것은 역사에 대한 과학적 해석인 척했다. 마르크스주의만이 역사의 행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반미주의도 그런 주장을 한다. 반미주의는 마르크스주의라는 광대한 역사 해석에서 일종의 곁가지와도 같다.

반미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맥도널드 햄버거를 예로 들어보자. 맥도널드를 경영하는 미국 기업가는 “나는 그저 돈을 벌고자 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반미주의자는 수긍하지 않는다. 그가 이해하는 맥도널드는 세계를 대상으로 한 미국 제국주의 음모의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맥도널드와 싸우는 것은 미국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것이다. 맥도널드 때문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지역 문화와 비즈니스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도 있다.

두 해석 모두 일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각자 자신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맥도널드가 세계적 성공을 거두는 데는 ‘표준화’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 맥도널드가 보기에 인간은 사는 장소나 문화는 달라도, 대부분 대동소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맥도널드의 성공은 맥도널드의 논리가 경험적으로 옳다는 것을 입증한다.

하지만 반미주의자의 말도 옳다. 맥도널드 때문에 젊은 세대는 전통 음식을 구시대의 유산쯤으로 여긴다. 또 맥도널드가 들어간 나라는 미국화하기 십상이다. 맥도널드는 싫건 좋건 그 역동성 때문에 제국주의적 결과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모순되며, 또 제각기 옳게 보이는 해석들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내 대답은 미국은 내켜 하지 않으면서도 제국이 된 ‘비의도적 제국’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세계적 팽창이나 미국 가치의 세계적 확산의 필요성에 대해 미국은 내부적으로 분열돼 있다.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일부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국을 자유의 제국으로 봤다. 미국은 인류를 위한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나라란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내 또 다른 정치적 흐름은 보호주의와 고립주의다. 미국이란 낙원을 국외 문제와 연계해 망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팽창주의자와 고립주의자 간 토론은 이론상으로만 의미가 있다. 미국은 이미 세계 곳곳으로 팽창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제국주의의 비의도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 혹은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꿈이 무어냐고. 그들의 대답은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군은 제국주의자의 자질이 없다. 로마나 대영제국을 건설한 병사들과는 다르다.

반미주의자는 내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카를 마르크스처럼 말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무시하는 역사를 써 나가는 것이라고. 해외 주둔 미군은 기계의 톱니바퀴와 같다. 자신도 모르게 미국이라는 제국의 건설을 위해 투입된 존재일 뿐이다.

반미주의는 역사적으로 매우 탄력적인 이데올로기다. 시간이나 상황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19세기 초 유럽은 미국을 두 가지 이유에서 멸시했다. 하나는 미국이 무질서한 군중의 지배를 받는, 즉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미국엔 진정한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년이 흐른 지금, 미국식 민주주의가 세계의 표준이 됐고, 미국 문화가 지구촌 구석구석에 침투했지만 반미주의자의 논거는 옛날과 같다. 반미주의자는 미국 문화가 천박하며, 미국 정치가 변덕스러운 여론에 종속적이라고 비난한다.
반미주의자는 보통 자신을 반미주의자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그는 미국이 처신만 다르게 한다면 반미주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반미주의 수준을 여론조사로 측정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군이 서유럽을 해방했을 때 친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라크에선 미군이 사담 후세인을 축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반미주의가 다시 등장했다. 이런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남의 힘으로 해방되는 것을 좋아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자신이 스스로 독립을 쟁취할 능력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또 대안적 이데올로기의 자연스러운 적이 되기 십상이다. 만일 당신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미국은 당연히 당신의 적이다. 급진 이슬람주의자를 예로 들어보자. 그들이 미국을 증오하는 이유는 미국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본질 그 자체 때문이다. 사이드 쿠트브는 근대의 급진 이슬람을 창시한 이집트 학자로 1940년대에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 정부의 후원으로 미국에서 공부했지만, 그에게 미국은 섬멸해야 할 악마였다. 그가 이런 극단적 결론(이 결론은 9ㆍ11 테러에도 영향을 미쳤다)에 도달한 이유는 미국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 여성 모두를 성매매 여성으로 보았다. 그에게 베일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남성과 평등한 여성은 모두 성매매 여성이었다. 중동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해도,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은 미국 여성이 자유를 누리는 한 미국을 멸망시키려 할 것이다.

세계의 많은 학자들도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미국사회에 문화가 없다고 멸시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미국의 가치체계가 아시아나 유럽과 다르기 때문에 학자들은 미국을 혐오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인정받는 가치는 돈ㆍ권력ㆍ대중적 인기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미국사회를 우습게 본다.
이런 반미적 태도는 미국에 대한 인식에 따른 것으로, 미국의 실상과는 관계가 없다. 반미주의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

미국 모델을 찬양하는 사람도 많은 경우 미국의 실상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국에서 시장경제가 더 발달하고 노조가 더 약화하기를 바란다. 반미나 친미나 각기 자신들의 어젠다를 추구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희생양이나 약속의 땅이 된다.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우리가 왜 사실상 미국이라는 제국의 틀 안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더욱이 이들은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를 대신할 대안도 제공하지 못한다. 만일 미국이라는 주적(主敵)이 사라진다면 반미주의자는 어디로 갈까.

정리=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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