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 '한집' 놓고 벌이는 처절한 공방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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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11보 (226~258)]
白.李昌鎬 9단 黑.謝 赫 5단

"한집은 땅,두집은 하늘." 독설가 서봉수9단의 정곡을 찌르는 명언이다. 바둑 한판을 이기려면 우선 돌을 초개와 같이 버릴줄 알아야하고 잔돈보다는 대세를 좇을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생사가 오가는 폭풍속에서도 한두집을 생명처럼 여길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승부사다. 세상사는 뭐든 이처럼 이율배반이다.

한집은 지푸라기처럼 가벼운 것이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승부를 좌우하는 키가 된다. 바로 이판의 경우가 그러한데 2백수가 넘어 판이 빽빽해진 지금도 반집을 다투는 가쁜 호흡소리가 판 위에 가득하다. 한마디로 진을 빼고 있는 것이다.

검토실에선 "백쪽에 부가 있다"고 말한다. 이창호9단이 놀라운 침착성으로 비세를 극복하고 반집차로 앞서고 있다고 한다. 이창호니까 결국은 이길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바로 이때 하변에서 255에 이은 257이 등장했다.

처음 255는 초읽기에 쫓긴 셰허5단이 급한 김에 시간연장책으로 둔 줄 알았다. 그러나 연이어 257로 끊는 수가 판 위에 놓이는 순간 어디선가 "어!"하는 짧은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다음 짧고 무거운 침묵이 흐르더니 검토실이 소란해졌다.

257은 매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우선 '참고도' 백1로 잇는 것은 본래의 A자리 가일수 말고 B에도 한수 가일수해야 한다. 백집이 예상보다 한집 줄어들게 된다.

지금은 한집에 승부가 오가는 상황이기에 한집은 곧 목숨이다. 그래서 李9단은 일단 258로 따내고 본다. 한데 이 직후 셰허가 다시 한번 폐부를 찌르는 한수를 두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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