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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몰고온 사람”…올 것이 왔다/고르비 물러나던 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각국 지도자들 업적치하/일부 시민 “압제 푼 민주지도자”
현지시간으로 성탄절인 25일 오후 7시(한국시간 26일 오전 2시) 발표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공식사임은 소련 안팎에서 극단적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고있다.
○…이제 소속공화국별로 국적을 달리하게될 소련인들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퇴임을 대체로 「올 것이 온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고별연설을 시청하기 위해 역대합실 등에 설치된 TV수상기 앞에 모여든 시민들은 경제난 등을 들어가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실책을 비판하는데 열을 올리기도.
우크라이나행 열차를 타려고 모스크바의 한 역에 나와있던 발레라 로슈케비치씨는 『고르바초프가 강대국 소련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했으며 퇴역군인으로 한달에 1백50루블의 연금을 받는다는 이반 페트로프씨는 『그는 3년전에 진작 물러났어야 한다』면서 『우리의 가난은 고르바초프 탓』이라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아나스타샤 바로노바라는 73세 노파는 『생활을 꼬이게 만든 사람의 말을 뭐하러 듣느냐』며 아예 TV수상기를 외면하기도.
○…그러나 일부시민들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경제적 실정에도 불구하고 압제의 사슬을 풀어준 민주지도자 였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모스크바 10월 광장에서 만난 아나톨리 이바노프라는 금속공은 한켠에 세워져 있는 레닌동상을 가리키며 『온갖 폐단은 저 작자 때부터 시작됐다』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희생양에 비유.
○…한편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냉전을 종식시킨 「평화의 사도」로서 금세기 최대 위인중 한사람 이라고 칭송.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날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가지려던 성탄휴가를 단축하고 백악관으로 급거귀임,고르바초프 대통령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귀하가 개혁과정에서 보여준 용기와 지도력을 높이 평가 한다』고 피력.
존 메이저 영국 총리,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만프레트 뵈르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일본 외상 등도 이구동성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업적을 치켜세우면서 그의 퇴임에 아쉬움을 표했으며 특히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특별성명을 통해 독일 통일에 대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결정적 공헌에 감사를 표시.
○…그러나 중국은 25일 소련 붕괴의 직접적인 책임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있다며 전례없이 강력히 비난.
중국은 이날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사임발표를 언급하면서 『그의 신사고와 글라스노스트(개방)·정치적 다원주의가 정치혼란과 민족분쟁·경제위기를 몰고왔다』고 주장.
○…한편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사임을 계기로 독립국가 공동체 결성을 주도한 러시아 등 구소련 공화국들에 대한 외교적 승인이 잇따르고 있다.
유럽공동체(EC)·영국·이탈리아·이스라엘·이란·리비아 등 세계 각국이 이날 러시아 등을 승인한다고 발표했고 미국·한국 등도 같은방침임을 밝혔다.
○…외국 주재 소련 대사관들도 소연방의 권리·의무를 러시아가 승계하기로한 방침에 따라 낫과 망치가 그려진 붉은기를 내리고 러시아의 삼색기를 게양.
그러나 이라크 주재 소련대사관 등에서는 독립국가 공동체에 반발,소련기 하강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일본 아사히(조일)신문은 25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가졌던 24일 회담에서 『죄를 인정한다면 지금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외신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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