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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LA’ 우리가 건설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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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세정악기유한공사의 피아노 공장.

이코노미스트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 청양(城陽)구 정양로. 완공을 앞둔 쇼핑몰 청도세정아리안이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지상 7층의 쇼핑몰 뒤로 보이는 16층 규모의 오피스텔이 사뭇 위압적이다. 세정아리안은 연면적 3만6000여 평 규모로 칭다오시에서 단일 건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 일찌감치 청양구의 랜드마크를 예약해 놓은 셈이다.

칭다오의 신시가지 격인 청양구엔 칭다오에 진출한 7300여 외국 기업의 3분의 1이 포진하고 있다. 하루 유동 인구는 약 20만 명. 칭다오 전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은 10만 명에 이른다. 칭다오 시민은 960만 명, 칭다오의 국제적 유동 인구는 280만 명을 헤아린다.

세정아리안의 상가루(복합 쇼핑몰)엔 화장품·잡화·귀금속 상가(1층), 의류·모피 상가(2~6층), 전문식당가(7층)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하 1층엔 한국의 코엑스몰형의 영에이지 몰과 푸드코트가 들어선다. 한국의 동대문 의류상가, 서울장신구조합, 중국은행, 교통은행, 농업은행, 동원 F&I 등은 입점을 확정 지은 상태다. 산둥성 최대의 모피 전문 상가도 들어선다.

200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골조공사 중이던 이 쇼핑몰을 인수한 청도세정악기유한공사는 요즘 꿈에 부풀어 있다. 단지 안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온천이 터졌기 때문이다. 세정 측은 식수로도 쓸 수 있는 유황온천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도세정아리안 건설사업본부 박성재 사장은 “종합루(오피스텔)에도 온천수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온천이 쇼핑몰과 오피스텔의 분양에 호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박 사장은 “프리미엄이 오를 뿐더러 시내에 있는 온천이라 쇼핑몰의 집객력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루 5~6층에 들어설 사우나에도 이 온천수가 공급될 예정이다. 종합루 4~16층엔 322세대의 한국형 오피스텔이, 3층 이하엔 근린 생활시설 등이 들어선다. 2300여 대를 세울 수 있는 전용 주차 빌딩도 손님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세정 측은 온천 홍보도 할 겸 4월 초 한·중 수교 15돌을 기념하는 축제를 공사 현장의 특설 무대에서 열 계획이다.

세정은 역시 청양구에 들어설 코리아 타운의 우선 개발자로도 선정됐다. 이 코리아 타운은 지역 정부가 먼저 입안을 해 특정 업체에 건설 허가를 내 준 첫 사례. 부지는 칭다오시가 지정한 중점개발 상업지역 안에 있다.

16만여 평의 부지엔 주상복합빌딩, 쇼핑몰, 업무 빌딩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세정그룹이 칭다오를 중국의 LA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세정아리안은 코리아 타운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세정아리안을 인수한 청도세정악기유한공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악기 회사다. 투자 규모는 1230만 달러. 공장 부지는 3만8000평에 이른다. 착공한 지 5개월 만에 제품을 생산해 업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이 회사는 연간 피아노 30만 대, 기타 60만 대를 생산해 미국·유럽·일본 등 5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볼드윈, 깁슨 등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하고, 독자 브랜드인 비바체와 미국에서 인수한 다른 두 브랜드로도 생산을 하고 있다.

청도세정악기는 그랜드 피아노, 업라이트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전자 기타 등 네 가지 제품의 생산 라인을 동시에 구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 공정을 자체적으로 커버하고 있는 것도 획기적인 일로 평가받고 있다.

피아노 30만 대 세계로 수출

청도세정이 만든 악기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60여 개 도시에 있는 110여 악기점을 통해 판매된다. 2005년엔 국내 시장에 역수출됐다. 청도세정악기의 이재석 사장은 한때 국내 굴지의 악기 메이커였던 삼익악기 출신이다.

삼익에서는 영업담당 전무, 인도네시아 법인장 등을 지냈다. 당시 삼익은 인도네시아에 6만 평 규모로 공장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부도를 맞았다. IMF 체제 시절이었다. 이 사장은 세정 박순호 회장의 동생과 친구 사이였다. 그는 박 회장을 만나 투자를 부탁했다. 삼익의 창업주였던 큰아버지 고 이효익 회장의 꿈을 이루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칭다오의 종합 쇼핑몰 청도세정아리안 전경(왼쪽). 청도세정아리안 단지 안의 온천 시추 현장.

박 회장은 그를 믿고서 알지도 못하는 악기 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청도세정악기 측은 중국이 향후 20년 이상 세계 최대의 악기 시장으로 각광 받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기폭제는 내년에 있을 베이징 올림픽이다.

청도세정 사령탑 이재석 사장의 비전은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에 제2의 세정그룹을 창업하는 것이다. 이미 청도세정악기·청도세정복장·청도아리안 등 계열사가 셋이다. 청양구 주민의 1%가 세정그룹과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의 LA로 부상하고 있는 칭다오에서 이 사장이 조율하고 있는 청도 아리랑에 한·중 두 나라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세정그룹은 어떤 회사

‘인디언’브랜드의 세계적 의류 업체

세정그룹은 패션 기업이 모태다. 대표 브랜드는 신사 정장·캐주얼로 유명한 인디안. 인디안을 만드는 (주)세정 등 패션·어패럴 기업 7개사를 비롯해 건설·악기·정보기술(IT) 등에 걸쳐 모두 13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종업원 수는 600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매출액은 8700억원, 올해 목표치는 1조원이다. 순조롭다면 창업 30여 년 만에 매출액 1조원을 달성하는 셈이다.

오너인 박순호 회장은 올해 예순하나로 경남 함안 출신이다. 박 회장은 1974년 여름 부산 거제동 중앙시장에서 편직기 2대, 재봉틀 5대를 놓고 처음 옷을 만들었다. 세정의 전신인 동춘섬유공업사 시절이다. 독립문의 면 폴라 티셔츠를 모방한 첫 작품의 히트로 남대문시장에서 입지를 다진 그는 88년 모험을 시도했다.

대기업처럼 대리점 체제를 갖추고 체계적인 브랜드 마케팅을 시작한 것. 이런 유통 채널의 전환이 주효해 매출액이 3년 만에 네 배 이상 뛰었다. 도약의 기회는 외환위기 때 왔다. 내수 부진에 자금난이 겹쳐 유명 브랜드들이 일부 대리점의 문을 닫자 이들을 끌어들였다. 그 덕에 3년 동안 140여 개의 인디언 매장을 새로 열었다. 전 매장의 40%가 이때 생겼다.

세정은 글로벌 패션 기업으로 비상하고 있다. 98년 중국 칭다오에 첫 해외 생산기지인 청도세정복장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에서는 인디안, NII, 올리비아로렌 등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엔 이 공장을 청도세정악기유한공사 옆으로 옮겼다. 이로써 9만 평에 달하는 세정청도공단이 만들어졌다. 독자적인 유통망도 구축했다. 2004년 상하이에 인디언세정상해복식무역유한공사를 세웠고, 같은 해 상하이 금응백화점에 인디언 1호점을 냈다. 올해는 톈진 등 중국 주요 도시에 매장을 확보할 계획이다.

미국에도 진출했다. 미국 진출도 IMF 체제의 산물이었다. 경제인으로서 외화 획득에 기여하기로 마음 먹은 박 회장은 OEM 방식으로 수출을 시작했다. 당시 납품을 받은 회사는 세정 덕에 4년 동안 매출이 300%나 신장됐다. 세정은 지난해 자사 브랜드 해리 바든으로 300만 달러어치를 팔았다.

올 들어서는 미국의 젊은 층을 겨냥한 바든&레이와 여성복 바든을 출시했다. 해리 바든은 사상 최초로 브리티시 오픈과 US 오픈을 동시에 석권한 영국 출신의 골프 선수. 해리 바든이라는 독자 브랜드를 론칭한 후 옷값이 OEM으로 생산할 때의 두 배로 뛰었다. OEM으로 이미 퀄리티를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인디언이라는 이름은 박 회장이 직접 지었다. 티셔츠를 처음 만들어 서울 남대문시장에 팔러 다닐 무렵이었다. 그는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우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서점에 들러 외국 책을 뒤적이는데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등에 활을 멘 인디언 추장이 말에 탄 채 광활한 평야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다. 맨주먹으로 황야와도 같은 의류 시장에 뛰어든 자신의 모습이 그 사진과 겹쳐졌다. 그는 주저 없이 첫 독자 브랜드를 인디언이라고 정했다.

인디언은 출범한 지 30년 만에 단일 브랜드로 연 매출 3000억원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 해에 인디언 브랜드로 700만 장의 옷이 만들어진다.

인디언은 지난해 11월엔 사단법인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주관한 ‘2006년 한국 브랜드 대상’ 시상에서 의류산업부문 및 종합 대상 브랜드로 선정됐다.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은 인디언의 다음 목표는 로열티를 받는 브랜드 수출이다.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은

야간 고교 다니며 사업 배운 입지전적 인물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은 말 그대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창업 30여 년 만에 세정을 매출 1조원을 바라보는 중견 기업으로 일군 그는 올해 진갑이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박 회장은 경남 함안군의 한 산골 마을에서 5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농사를 짓는 한편 숯을 구워 팔고 토종벌도 쳤다.

소년 박순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고도 그는 낮이면 농사일을 거들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해 하던 어느 날 그는 아버지에게 대처로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아버지는 완강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끈질기게 설득하는 아들에게 져주었다.

열일곱의 나이에 그는 마산에 정착했다. 그리고 내의 도매점 점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주판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그는 툭하면 셈이 틀려 핀잔을 들었다. 이를 악물고 밤이면 주산 연습에 매달렸다. 나중엔 상고 출신보다 셈이 빨라 가게 주인을 놀라게 했다. 거기서 야간 고등학교도 나왔다.

그 후 그는 사업가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서 제일 큰 부산진시장에 있던 메리야스 가게 서울상회에 점원으로 취직을 했다. 거기서 봉제업에 대한 경험을 쌓고 의류의 유통 과정도 익혔다. 68년 약관의 나이에 그는 독립을 했다. 부산 중앙시장에 가게를 차리고 이름을 동춘상회라고 지었다.

70년대에 접어들어 부산진시장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리고 73년 드디어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시제품 400벌을 들고 서울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반응이 좋았다. 이듬해 세정의 전신인 동춘섬유공업사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리고 회심의 역작 인디언을 론칭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동춘상회를 차리기 한 달 전 돌아가셨다. 인생의 낙이라고는 없이 평생 일만 하신 아버지. 살아가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당부했던 그의 아버지는 그렇게 그의 곁을 떠났다.

여생을 편히 모실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은 아버지가 야속해 그는 오래도록 울었다. 박 회장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아버지의 교훈을 지금껏 실천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박종성 옹은 그렇게 해서 박 회장의 정신적 지주로 남았다.

글=이필재 편집위원, 사진=강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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