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만 풍성 작품수준은 미흡|창작극 드물고 대부분 번역극이나 재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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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올해만큼 연극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적은 없었다. 예년보다 훨씬 많은 행사가 마련돼 그만큼 많은 작품이 공연되었고 관객도 늘었다. 비록 궁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정되었지만 어쨌든 올해는「연극의 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에 비해 질적인 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많은 공연이 있었지만 과연 뛰어난 작품이 얼마나 나왔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개막잔치 당시 한껏 부풀었던 기대는 『과연 남은것이 무엇이냐』는 의문과『앞으로 어떻게 될것인가』라는 불안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풍성했던 물량은 한해 내내 끊이지 않았던 잔치로 대표된다.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3월27일의「개막축전」이었다. 문예회관 대극장을 가득메운 연극인들은「80년 연극사에 처음인 잔칫날」을 맞아 대통령이 보내는 「경의」와 국무총리가 보내는「찬사」를 받으며『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가지자』고 다짐했다.
이어진「사랑의 연극잔치」는 5, 6월을 풍성하게 했다.『일단 연극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 을 끌자』는 기본 취지에 따라 그동안 히트했던 인기작을 한꺼번에 공연함으로써 관객동원면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수 있었다. 관객에게 할인의 혜택을 주는 「사랑티킷」5만장이 기업체등의 협력으로 매진됐다. 회사로부터 티킷을 얻거나 싸게 산 직장인, 평소 연극을 별로 보지않았던 관객이 대학로를 찾았다.『아가씨와 건달들』『에쿠우스』『외로운 별들』『한씨연대기』등 쟁쟁한 히트작들이 공연됐고, 당시 시작됐던『웨스트사이드스토리』『난센스』가 아직까지 인기리에 공연중이다.
아쉽게도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시작당시의 열기는 한풀 꺾이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진주에서 열렸던 「전국연극제」는 『연극의 해는 서울 연극인들만 위한 잔치』라는 지방연극인들의 불만이 깔린가운데 예년의 수준을 넘지 못한채 끝났다. 눈에 띄는 우수작이 없어 고민하던 심사위원들이 마지막 참가작을 결국 최우수작으로 뽑았지만 이미 서울에서 공연됐던 같은 제목의 작품과 너무 유사해 아쉬웠다.
가장 큰 행사인「서울연극제」역시 아쉬움을 남겼다. 일단 연극의 해를 맞아 공식참가작 8편외에 자유참가작을 허용, 행사를 풍성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전향적 운영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하지만 작품성 면에서는 전반적으로 기대에 못미쳤다. 공식참가작의 경우 작품수준이 너무나 큰 차이를 보였다. 예컨대 화가 이중섭의 삶과 예술혼을 그린 창작극『길떠나는 가족』은 탁월한 완성도를 보여 최우수상을 받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반면 일부작품은 제대로 다듬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올려져 예선심사 통과사실을 의심케 했다. 작품성과 별도로 신극사를 그린 『격정만리』가 기존의 보수적 시각과 다른 도전적 창작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주최측이 참가자격을 박탈당해 모처럼의 잔치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오점을 남겼다.
연극의 해에 대한 정부의 특별지원금 10억원을 재원으로 연극계는 끊임없이 잔치를 펼쳐왔다. 하지만「소문난 잔치」처럼 음식은 많았지만 먹을 것은 적었다. 잔칫상은 대부분 번역극이거나 재공연 작이었다. 연극발전의 밑거름이 될 창작 초연작은 예년처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더욱이 연극계 발전을 장기적으로 보장해 줄수있는 제도적 장치마련도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관객지원혜택을 주었던 사랑티킷과 서울티킷제도를 내년에도 시행하기 위해 신청했던 공익자금지원은 무산됐다. 연극발전을 위한 기금조성은 목표액 1백억원의 1%인 l억원에 그쳤다.
내년은 올해보다 작년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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