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용기있는 사과/김두우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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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이 참으로 어려운 일을 했다.
의사당 폭행사건에 대해 야당으로서는 드물게 자체 진상조사를 제대로 벌이고 사과까지 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밤 자정무렵 의사당내에서 민주당의원 보좌관과 운전기사들이 쟁점법안을 변칙처리하고 퇴청하던 박준규 국회의장을 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에게 의원도 아닌 운전기사가 길을 가로막고 폭력을 행사한 사실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국회에서 국회의장이 야당의원의 운전기사에게 폭행당했다는 것은 가뜩이나 땅에 떨어진 국회의 권위를 마지막까지 무너뜨린 행위다.
시급하지도 않은 법안을 날치기한 여당도 잘못이지만 이를 저급한 물리력으로 대응한 것은 말초적인 분풀이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23일 당소속의원 운전기사 2명의 관련사실을 시인한 조처는 당연하지만 용기있는 사태수습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부인으로 일관,발뺌하다가 검찰의 조사결과가 발표되면 마지못해 부분적으로 시인하던 정치권의 행태에서 본다면 민주당의 발빠른 대응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바람직한 사후처리를 하고 있다고 평가됨직하다.
아마도 야당은 정원식 국무총리에 대한 외대생들의 폭행이 강경대군 치사사건을 일거에 뒤엎어버리는데서 교훈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경찰이나 검찰발표를 기다리기 보다는 먼저 명백한 사실을 시인·사과함으로써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고 오히려 주도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음직도 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호재를 잡았다는 듯 야당을 비난하고 사건을 부풀린 여당의 행태도 짚고넘어가야할 대목이다. 야당의 주장대로 날치기파문을 상쇄하려는 정략적 의도가 없었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민주당이 대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였으므로 민자당의 태도를 한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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