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예술문화사 집대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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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부산의 원로 언론인이자 문화예술인인 박두석씨(70·부산시동광동1의1)가 부산지역 예술·문화를 총괄하고 체계화한 예술·문화 역사책인『부산의 예술문화』를 고희기념으로 출간했다.
3백여쪽 분량의 이 책은 박씨가 80년 부산일보 주필당시 언론정화조치로 강제 퇴사당한 뒤10년동안 부산의 예술·문화를 집대성한 것.
제1부에는 부산에서 전통문화가 자리잡을 수 없었던 특수성과 시대별 부산문화·예술의 활동상을 소상히 기록했고 제2부에서는 주로 80년대에 발표된 전반적인 문화 단평들을 담았다.
제3부는 자신의 지난40년간 부산문화·예술생활을 회고한 소제목 「부산문화종사기」로 엮어져 있다.
저자는 『문화가 제자리를 잡고 활성화되지 않으면 한 나라의 융성도, 한 지방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펴낸 것』이라고 말한다.
1921년 경남진양군나동면삼계리에서 태어나 진주 중안국교·서울경기고를 거쳐 일본 경응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박씨는 귀국후 51년부터 진주고에서 잠시 교편을 잡다가 54년 부산대교수를 거쳐 57년 부산일보 논설위원으로 언론계에 투신했다.
그러나 타고난 직필때문에 5·16쿠데타 당시 언론인 검거선풍때 군사정권에 의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박씨는 이후 부산일보편집국장·경남신문사장겸 마산문화방송사장등을 거쳐 부산일보주필을 지내던 80년 또다시 「4·19 20주년기념 사설사건」으로 인해 언론정화대상 인물로 지목돼 부산일보에서 강제 퇴사당했다.
박씨는 일본 경응대시절에도 우리말로 쓴 일기때문에 일수에 의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44년 학병으로 강제징집돼 중국 절강생 주둔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중국군에 투항한 전력도 있는 전형적인 반골기질의 소유자.
일본유학시절 연극·소설에 심취했던 것이 계기가 돼 문화·예술과 인연을 맺은 박씨는 귀국후 한때 진주에서 작가 이병왕씨등과 함께 「국문학 연구회」를 조직, 본격적인 문화활동을 시작했다.
부산시절 그의 활동은 더욱 왕성해져 58년 「부일영화상」을 기획하고 같은해 「부산영화평론가협회」를 조직해 회장을 지냈으며 63년부터 부산예총지부장을 다섯차례 역임하면서 종합문예지 『부산문예』를 창간하고 「영남학생연극경연대회」등을 만들기도 했다.
또 민간주도의 최대규모 미술공모전인 「민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포도 없는 전쟁』『상처기』등이 있다.【부산=정용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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