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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국 로체샤르·로체 남벽 원정대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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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 경칩'. 2007 한국 로체샤르남벽·로체남벽 원정대가 남체 바자르에서 바짝 엎드린 채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어제 오후에 남체에 도착한 원정대는 25일 오전 9시 느긋한 아침 식사를 했다. 3개월의 장도에 오른 만큼 원정 초반에는 무리하지 않고, 서서히 체력을 다지겠다는 계획이다. 그래서 엄홍길(47·트렉스타) 대장은 전날 밤 "내일 아침은 늦잠을 자도 좋다"고 대원들에게 일렀다.

해발 3440m의 남체 바자르는 트레커나 등반대원(Climber)모두 고소(高所) 증세를 느끼는 지점이다. 16명의 등반대원을 포함해 모두 22명으로 꾸려진 이번 원정대 멤버 중 한두명은 25일 아침 경미한 정도의 고소 증세를 호소했다. 두통 소화 불량 등의 고소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곧바로 하산해 해발고도가 낮은 지점에 머무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엄홍길 대장은 남체바자르보다 해발고도가 300~400m 높은 샹보체(Syangboche)까지 다녀오라는 이열치열 처방을 내렸다. 그는 "카라반이 막 시작된 3400m 지점에서 내려갔다가 다시 본진에 합류하려면, 그게 더 힘들 수 있다"며 "그 정도의 경미한 증상은 오히려 고도가 높은 지점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게 낫다"고 말했다.

실제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인 칼라파타르(Kalapatar 5400m)로 향하는 트레커들 대부분은 남체바자르에서 두통 등의 경미한 고소 증세를 겪지만, 곧바로 하산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이 곳에서 이틀을 머물려, 둘째날 샹보체 트레킹을 통해 고소 환경에 대한 적응 시간을 갖는다.

히말라야 로체 베이스 캠프 가는 길.불교 경전이 적혀 있는 바위를 지나고 있다. 로체=김춘식 중앙일보 기자

■밀레의 그림처럼 평화로운 마을

남체 바자르는 동쪽으로 탐세르쿠(Thamserku 6608m), 남동쪽으로 캉테가(Kangtega 6779m), 서쪽으로 콩테(konde, 6187m)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다. 마을 앞으로는 히말라야 빙하에서 흘러내려오는 '밀키워터'(Milky Water)가 계곡을 이루고, 마을의 배꼽 부분에는 계단식 밭이 자리잡고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40여 채의 롯지(Lodge)를 포함한 민가들이 육상 트랙의 코너 부분처럼 들판을 둘러싸고 있다. 첩첩 두메 산골 속, 움푹 패인 지점에 꽈리를 틀고 있는 이 마을은 한국의 어느 산골이었다면 '복조리 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려졌을 지도 모른다.

봄을 맞은 남체 바자르는 평화롭기만 하다. 마을을 둘러보던 중, 감자를 심는 아낙네들을 마주쳤다. 2명이 한 조가 돼 한 명이 곡갱이로 땅을 파헤치면, 옆에서 씨감자 바구니를 들고 있는 아낙은 재빨리 파헤쳐진 흙구덩이 속으로 씨감자를 던져 넣는다. 감자밭은 이랑도 고랑도 없이, 야크와 조프키옥스(야크와 소의 잡종) 똥 만이 밑거름 용으로 뿌려져 있다.

세르파족들의 농삿일은 대부분 아낙들이 맡는다. 거의 1세기 전부터 세르파 남자들은 고소에 짐을 져 나르는 포터로 일하고, 집 근처에서 농사짓는 일은 여자의 몫이다. 그러나 아낙들로만 꾸려진 감자밭에는 웃음이 넘쳐난다.

4명의 감자밭 일꾼 중 하나인 마야(Maya)는 기자에게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일본에 가서 살고 싶은데, 나랑 여기서 결혼한 다음 일본으로 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옆에 있던 한 아낙은 그렇게만 한다면 "당장 오늘 저녁이라도 빅파티를 열어줄 것"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비싼 카메라를 들고 있던 기자를 '돈많은 일본인' 으로 알았나 보다. "아이 엠 코리안"이라고 했더니, 코리아도 좋단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에게 아시아의 돈 많은 나라, 한국이나 일본은 동경의 대상일 지도 모른다. 이 곳 남체의 공립학교 선생님 월급은 15~20달러 남짓, 그에 반해 외국인 트레커들은 하루 수십달러씩 쓰고 간다.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 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우리가 갖지 못한 그 무엇을 엿볼 수 있다. 밀레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정신적인 행복 말이다.

텡보체(네팔)=김영주 기자 [humanest@ilgan.co.k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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