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의 중국 부자 이야기] 장이모의 든든한 투자 파트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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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영화제작자 장웨이핑

포브스코리아장웨이핑(49)은 탁월한 인맥과 영업력을 발휘해 영화 제작자로 성공한 인물이다. 현재 그는 장이모(張藝謨) 감독의 투자 파트너다. 장웨이핑이 동업자로 나서면서 장 감독은 <연인> · <황후화> 등 영화마다 줄줄이 대박을 터뜨렸다.


장사란 뭔가. 장사는 계약과 거래로 이뤄지는 것이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런데 중국에 이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상인(商人)이 한 명 있다. 무시라고 하면 어쩌면 부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개념이 그의 머릿속에는 아예 들어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추정 재산만 약 10억 위안(약 1,200억원)이 넘는다. 그가 바로 장웨이핑 신화면영화유한공사 대표다. 한국 영화계로 따지면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와 같은 흥행영화 제작자다. 장웨이핑은 중국 영화계에서는 장이모 감독보다 더 높게 평가된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영화에 관심을 갖고 제작자로 나선 것은 아니다. 영화계 입문도 사실 ‘정(情)’ 때문에 이뤄졌다. ‘정 나누기(交情)’는 그의 일관된 생활방식이다.

그는 197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베이징(北京)의 푸런(輔仁) 병원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약제실에서 근무했던 그는 눈썰미가 뛰어나 금세 약의 위치를 외워 약제사보다 더 능숙하게 약을 찾아 냈다.

그의 솜씨를 눈여겨 본 병원 측의 배려로 그는 베이징약학대에서 2년간 약학을 공부했다. 그 후 정식 약제사로 병원에 복귀했고 이때부터 대외 업무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병원 동료는 “장웨이핑을 한 번 만나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좋아하고 따르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대인관계가 좋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도 넓다.

90년부터 직접 사업을 시작한 그는 우선 인맥을 바탕으로 부동산 중개업소를 창업했고, 약재 중개상, 기내 식품 공급업체 등을 차례로 세웠다. 사업 성과도 좋았다. 남이 손을 털고 나간 사업체를 그가 인수하면 바로 황금알로 변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때 장웨이핑이 친구 소개로 만난 인물이 장이모 감독이다. 그 둘은 만나자마자 의형제를 맺고 각별한 사이가 됐다. 주변에서는 이 둘을 가리켜 ‘우젠즈유(無間之友, 격이 없는 친구)’라고 부를 정도였다. 두 사람은 자주 어울렸지만 영화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장웨이핑도 영화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96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영화계에도 찬바람이 불면서 투자 발길도 끊기고 이때 장 감독은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자주 장웨이핑을 찾아가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장웨이핑은 아무 말도 없이 불쑥 2,000만 위안(약 24억원)짜리 수표를 꺼내 장 감독 앞에 내놨다. 친구를 위해 투자자로 나선 것. 장웨이핑의 적극적인 투자 이후 장 감독은 영화 <영웅> · <연인> 등을 줄줄이 성공시켰다.

▶ 웨이핑이 제작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황후화>.

최근 두 사람이 손잡고 만든 <황후화>(원작은 滿城盡帶黃金甲)는 중국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영화 흥행 수익은 약 10억 위안(약 1,200억원)에 달할 것이란 소문이다. 장 감독은 <황후화> 개봉 이후 1,400만 위안의 영화진흥기금과 878만 위안의 영업세를 중국 정부에 납부했다.

이제 계약과 거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장웨이핑은 장 감독과 손잡으면서 영화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영화 한 편당 수천만 위안 혹은 수억 위안의 투자비를 거래했다. 96년부터 약 10년 동안 이런 일은 줄곧 반복됐다.

그러나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장웨이핑과 장 감독 사이에 계약서나 차용증을 써본 적이 없다. 게다가 장웨이핑은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오로지 장 감독만 믿고 투자를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수억 위안의 매출을 올리는 신화면영화사의 직원이 달랑 12명이란 점이다. 도대체 12명의 직원으로 어떻게 그처럼 방대한 사업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

다음은 신화면영화사의 한 직원이 최근 한 영화 잡지와 한 인터뷰에서 들려준 말이다.

“새 영화가 출시되면 엄청난 홍보 요원이 필요해요. 우린 부족한 직원 수에도 한 번도 홍보대행사를 동원한 적은 없어요. 필요한 경우엔 수백 명의 인원이 삽시간에 몰려드니까요. 이들은 모두 장 사장의 친구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이에요. 필요할 때면 사장의 친구들이 언제라도 직원들을 보내준답니다.”

매우 중국적이고 동양적인 장면이다. 서구적 계약사회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러나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장웨이핑의 지론인 ‘교정’이 중국의 경우 가장 효과적인 사업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장웨이핑은 돈이 많다는 사실도 부정한다. 돈 많은 사람은 근본적으로 영화를 찍지 못한다는 게 장웨이핑의 지론이다. 한 번은 한 중국 기자가 영화제작에 수억 위안이 투자되는 데도 돈이 없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대부분 빌렸다”고 말했다.

“<황후화>에 투자된 돈은 3억6,000만 위안이에요. 그러나 이 돈이 다 내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대개는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이지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영화 제작비의 70%는 영국의 스탠더드차터드 은행에서 빌린 겁니다. 은행은 이익금 분배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두툼한 이자를 챙기게 되지요.”

그의 영업력을 보여주는 이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영화는 저당잡힐 게 없는 서비스 산업이다. 결국 명성과 실력만으로 대출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요즘 영화 제작비는 수억 위안을 넘나든다. 한 조직이나 개인이 선뜻 내놓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결국 은행이 나설 수밖에 없다.

장웨이핑은 <영웅> 제작 당시에도 은행에서 제작비를 빌렸다. 사실 국제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대출심사를 위한 전문 평가팀을 운영한다. 그들은 감독과 출연 배우의 국제적 영향력, 대본, 홍보 대행사의 역량 등을 꼼꼼하게 따진 뒤 대출 여부를 결정한다.

국제금융기관의 대출을 얻어내는 실무 주역 역시 장웨이핑이다. 장 감독의 명성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 그의 영업력이 없었다면 애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작업이다.

지난해 장 감독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개 · 폐막식 총괄 감독으로 선임됐다. 당분간 영화판을 떠나게 된다. 그러자 수많은 영화감독이 장웨이핑을 찾아왔다. 이들은 한결같이 “장 감독이 자리를 비웠다고 중국 영화도 자리를 비울 순 없다. 장 감독이 없는 사이 손잡고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제의했다.

장웨이핑은 단번에 모든 제의를 거절했다. 이유는 단 하나 장 감독을 배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자신은 이미 장 감독하고만 영화를 만든다고 자신과 약속을 했다.

“그럼 1~2년간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냐”고 묻자 그는 “잘됐지 뭐. 오랜만에 식구들과 함께 여행이나 가볼까”라고 말하곤 빙긋 웃었다.

진세근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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