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화해,실천의지가 열쇠다/고위급회담 합의서서명 다음 과제(사설)

참으로 값진 결실이다. 남북한당국이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남북한의 관계 개선과 통일의 앞날에 극적인 돌파구를 열었다.
온겨레가 이제야 비로소 분단으로 빚어졌던 남북한사이의 갈등과 대결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실질적인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을뿐더러 통일의 꿈도 좀더 현실성 있게 가질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남북한 사이에 있었던 어떠한 약속보다도 귀중하고도 역사적인 결실이다.
더구나 국제질서가 혼미하여 불안한 가운데 긴장상태만 빚어왔던 남북한 당국이 서로 호양의 정신으로 이러한 역사적 문건을 만들어낸 것은 민족의 역량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점점 각박해지고 경쟁이 치열한 국제사회에서 내부적으로 소모되고 낭비돼온 민족의 활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남북한 관계를 규정한 역사적 문건으로서 우리는 7·4남북공동성명을 들어 왔다. 7·4성명은 다분히 포괄적·선언적인 성격이 짙은 원칙론이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서는 7·4공동성명에 비하면 훨씬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만큼 남북한 관계가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러한 기틀을 어떻게 잘 활용하고 살려 나가느냐하는 점이다. 남북한 당국이 합의내용을 얼마나 성실하게 실천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번 합의서가 남북한사이에 있었던 합의나 약속중 그 어느때보다 알찬 내용을 담고 있으나 그 실천방법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문제는 앞으로 구성될 공동위원회와 그 분과위원회를 통해 논의하기로 돼있다.
따라서 합의서의 획기적 의미를 평가하면서도 그 추후과정에 대해 이제 더많은 관심을 갖고자 한다. 이를테면 남북한 사이에 가장 논란이 되어왔던 군사적 신뢰구축조치와 관련해 논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얼핏보면 남북한이 서로 양보한 것 처럼 보이지만 우리쪽 입장에서 보자면 신뢰구축조치에 미흡한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군사연습의 통보문제,대량살상 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군축실현문제등을 공동군사위원회에서 협의,추진한다고 합의서는 규정하고 있다.
당초 이러한 문제에 대한 「조처를 취한다」던 우리방안과 비교하면 상당히 불확실한 점이 눈에 띈다. 협의를 해가는 과정에서 실제로는 많은 쟁점이 논란될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그럴 경우 만약 어느 한쪽에 실천의지가 부족하다면 군사적 신뢰구축조치 하나만 가지고도 많은 시간과 힘을 소모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모든 문제 하나하나가 그러한 논란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그러한 문제들로 앞으로 부문별 공동위원회의 실천방안 논의과정에서 시간을 허비한다면 모처럼의 「역사적 합의」는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주게 될 것이다.
또 하나 이번 고위급회담의 주요문제였던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북한에 대해 실망했다는 솔직한 심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핵협정에 서명하고 사찰에 응할 수 있는 여건을 우리측이 충분히 제공했는데도 명시적인 태도를 밝히지 않고 있음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표접촉을 곧 갖기로 합의했다고 하나 우리측 제안에 대해 최소한도 공개적이고 구체적인 평가정도는 했어야 한다고 믿는다.
너무 뜻밖의 제안에 대해 검토할 시간적 여유를 갖기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또 무슨 흥정거리로 삼으려는 시간벌기 속셈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설이 나오는등 전쟁위협과 관련된 핵심문제라는 데서 어물쩍 넘길 일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그러나 순수하고 진정한 민족화해의 의지가 있다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7·4공동성명의 예에서 경험했듯이 남북한 어느쪽이나 내부적인 사정,이를테면 정치적인 의도나 목적이 개입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과거의 그러한 예가 남북한 관계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쳤던 점을 거울삼아 앞으로의 남북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이번 합의서는 우리민족에게 빛나는 역사적 문건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