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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한국 농업의 재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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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농가도 수출을 해야 먹고살 수 있어요." 20여 년간 장미를 재배해 온 안영달(65.경남 김해시 대농면)씨의 목소리에는 각오가 묻어났다. "머지않아 중국산 화훼가 마구 밀려들 겁니다. 농업도 살려면 샌드위치 신세에서 과감히 벗어나야죠."안씨는 지난해부터 미국에 장미 수출을 시작했다. 찔레와 장미를 접붙여서 일반 장미보다 튼튼하고 긴 '스프레이 장미'를 개발한 덕분이다. 길이가 일반 장미보다 10cm 이상 길기 때문에 송이당 50원 정도 비싼 값에 팔린다. 일본을 드나들며 어깨 너머로 터득한 비법 때문이다. "농사도 이제 세계 단위로 지어야 한다"는 안씨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하다.

수출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국내 농가들이 늘고 있다. 시장 개방과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수출을 통한 경쟁력 확보밖에는 탈출구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대개 재배 이전에 수출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입 확보도 장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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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개 소규모 배 농가들이 결성한 '아산원예영농조합'은 2001년 대미 수출 길을 뚫는 데 성공했다. 2003년부터 대만에도 수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수출을 통해 올린 매출은 18억5000만원. 2001년 100t 정도였던 수출 물량은 지난해 1200t으로 늘었다. 이 조합이 수출을 생각한 것은 2000년 배값이 폭락하면서부터다. "힘들게 재배한 배를 헐값에 팔아넘겨야 했죠. 무슨 방법을 찾아야겠다 싶어서 수출길을 알아봤습니다."이 조합 김창수(40) 영농지도사의 말이다. 이때부터 배 이외의 다른 작물을 모두 뽑고 시설도 개선한 후 미국 업체와 수출 계약을 했다. 지난해부턴 미국 월마트에도 납품하고 있다. 이 지도사는 "처음엔 미국 동포들이 주로 찾았지만 이제는 현지인들에게도 한국 배가 인기"라고 말했다.

미국 대형 할인점에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배가 진열돼 있다.[농협무역 제공]

오이.가지 등 야채류 수출도 늘고 있다. 지난해 한국산 오이.가지.고추피망은 일본의 수입시장을 완전 석권했다. 일본 수입시장 점유율 100%를 기록한 것이다. 일본 수입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농산품은 이 외에도 백합.장미.파프리카.수박.배 등 다섯 가지가 더 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농산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결은 품질과 가격경쟁력이다. 일본 시장에 진출한 한국산 농산품은 품질은 비슷하지만 값은 20% 정도 싸다. 이에 따라 국내 화훼류 수출은 지난해 8077t으로 10년 전보다 21배나 늘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차흥식 원예수출부장은 "국내 농업은 세계적인 재배 기술을 갖고 있다"며 "유리온실 등 첨단 재배시설을 통해 대량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격경쟁력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수출이 늘면서 브랜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공동 브랜드 '휘모리'를 통해 품질 좋은 한국산 농산물을 세계시장에 알리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돼지고기.쇠고기.사과.배를 비롯한 지역 특산품의 브랜드화를 꾀하고 있다. 농림부 김달중 차관보는 "미국의 오렌지 브랜드인 '썬키스트'나 뉴질랜드의 '제스프리' 등과 같은 세계적 농산물 브랜드가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 바로잡습니다

3월 21일자 E1면의 '한국 농업의 재발견' 기사에 나오는 장미 재배 농가 안영달씨의 주소를 '경북 김해시'에서 '경남 김해시'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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