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세 미국보다 낮다" 권 부총리 말 따져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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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선진국과 비교해 부동산 세금의 착시 효과를 부풀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15일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집값과 비교한 세금 비율)이 공시가격 8억원 기준으로 0.4%에 불과해 미국의 1~1.5%보다 턱없이 낮다"고 말했다. "보유세 과표를 2009년까지 (실거래가와 똑같은) 100%로 올려도 문제가 없다"고도 했다.

보유세 실효세율만 따지면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미국에선 보유세는 물론이고 주택담보 대출(모기지론) 이자까지 소득공제를 받아 실제 부담하는 세금과는 차이가 크다. 심지어 모기지론을 많이 받은 사람은 소득공제로 감면받는 세금이 보유세로 낸 돈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따라서 실제 세금 부담액은 외면하고 보유세 실효세율만 평면적으로 따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미 보유세 부담은=미국 버지니아의 60만 달러(약 5억6700만원)짜리 집에 사는 동포 제이슨씨는 최근 중앙일보에 자신의 세금 납부 명세를 보내왔다. 이를 제이슨씨 집과 비슷한 가격대인 경기도 용인 이모(50)씨의 64평 아파트 보유세와 비교해 봤다. 지난해 제이슨씨는 재산세(property tax) 4000달러(378만원)를 버지니아 주 정부에 냈다. 집값의 0.6%였다. 반면 올해 공시가격 6억7200만원인 용인의 64평 아파트에 사는 이씨는 200만6000원의 보유세를 내야 한다. 이는 집값의 0.3%에 불과해 세금 부담이 제이슨의 절반밖에 안 된다. 한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대목은 여기까지다.

문제는 그 이후다. 제이슨씨는 집을 사면서 받은 모기지론 45만 달러(4억2520만원)의 이자 2만5000달러(2360만원)와 버지니아주에 낸 재산세 4000달러를 합친 2만9000달러를 연방정부로부터 소득공제 받았다. 연봉 12만 달러인 그는 이 덕분에 과세 대상 소득이 9만1000달러로 줄어 7000달러(661만원)의 세금을 아꼈다.

결과적으로 제이슨은 재산세 4000달러를 부담했지만 7000달러의 세금을 덜 내게 됐다. 정부로부터 3000달러를 지원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이슨은 "미국에선 고액 연봉자가 소득세를 줄이려 일부러 모기지론을 많이 받아 비싼 집을 사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반면 2억5000만원을 대출받아 집을 산 이씨는 사정이 딴판이다. 1년 이자 1300만원은 물론 보유세 200만6000원까지 소득공제를 한푼도 못 받는다. 국내에도 주택담보 대출이자에 대한 소득공제가 있긴 하다. 무주택자나 전용면적 25.7평 이하, 공시가격 3억원 이하에만 해당되며 그나마 한도도 연간 1000만원이다. 결국 실효세율은 한국이 낮지만 실제 부담은 한국이 훨씬 무겁다는 이야기다.

◆보유세 개념도 달라=미국에선 보유세를 주 정부가 거둬 전액 주 정부 예산으로 쓴다. 보유세를 많이 내면 자기가 사는 곳의 교육.경찰.환경 등이 그만큼 개선돼 조세 저항이 크지 않다. 또 재산세가 높은 곳은 주거환경이 좋은 곳으로 평가돼 집값도 오른다. 이에 비해 우리 종합부동산세는 집값이 비싼 곳에서 거둬 싼 지역 주민을 위해 쓰게 돼 있다. 보유세가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한 수단인 만큼 조세 저항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정경민 기자.중앙데일리 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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