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가 「창작」인가/최병식 미술평론가(긴급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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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술대전 양화대상 작품 표절을 보고…/「모방합성」은 예술일수 없다
일반적으로 예술의 본질을 논할때 가장 중요시 되어지는 요소로는 「미의 창조적 표현 형성」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여기에서 「창조」의 주체는 작가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에 있어서도 객관대상에 대한 심미의식에 의거한 재조형이든 다른작가의 사진작품이나 예술행위에 의한 재조형이든 「창작」이라는 근본적인 요소가 변질될 수는 없다.
미의 광범위한 영역이나 해석여하의 문제 역시 미학이나 예술학에서 연구가 엄밀히 뒷받침 하고 있기 때문에 「창조적 표현」이라는 근본은 함몰될 수 없다.
최근 몇년간 우리의 미술계의 잇따른 표절·모방사건에 이어 조원강씨의 미술대전 대상 수상작이 외국작가의 사진작품을 표절한 것에 대한 시비가 일어난 것은 엄밀히 말해 외국작가의 작품을 예술의 두가지 가장 중요한 구조,즉 「내용」과 「형식」 모든면에서 그대로 묘사하여 옮겨 놓았다는데 충격을 금치못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형식」이란 미술의 경우는 형상,소재,기법,색채,구도 등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며,「내용」이란 정신적 측면에 있어서의 창작적 차원을 말한다. 그러나 그 조씨의 작품은 위의 형식과 내용 그 어느면에 있어서도 거의 창조적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올리의 형식적 느낌까지도 일치하고 있는 점은 다시금 작가 자신의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것이다. 만일 이같은 묘사 그 자체가 현대예술의 반자명성이나 국제적 경향의 현상으로부터 비롯된 결과라고 한다면 위의 창조적 근원은 실종되고 말 것이며,그것은 곧 예술의 실종을 의미한다.
작가 조씨는 『독자적 방법론으로 제작한 작품』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엄격히 말하자면 다다이스트들이나 팝아티스트들이 역사에 대한 풍자나 반복 및 재현에 의거,복제적 행위나 사진을 사용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방 합성기법」이다.
화면 전체에 흐르고 있는 유려한 누드의 곡선이나 촉감적 감각과 함께 가슴·손가락·허리 나아가서는 천의 구김까지도 거의 완벽하게 복제한 테크닉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한다면 『작품에서 우연의 일치마저도 용단과 인내에 의해 폐기되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었던 이번 서양화부분 심사위원 ㅇ씨의 논리는 어떻게 이해될 것인가.
국세로써 어렵게 만들어진 문예 진흥기금으로 신진 등용문의 역할을 해왔던 국내 최대공모전의 위상이 이토록 심각한 기초적 예술관의 함몰을 거듭하고,무비판적인 무임승차식의 외래사조의 수용만을 거듭한다면 어찌되겠는가.
이번 사건은 단순한 표절을 넘어서서 「지적소유권」에 대한 차원에서의 문제까지 제기하고 있다. 주관성 없는 재현과 무조건적인 모방의 현상이 만연하는 일부 우리 미술계의 실정에서 볼때 예술철학의 주체적 존립이라는 시급한 문제점을 교육적 시각에서 적극 개선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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