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지망생 왜 이리 많은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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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사회에서 「정치」의 비중 낮춰가자
정치는 날로 불신의 대상이 되어가는데 정치지망생은 왜 이토록 늘어만 가는가. 기어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겠다는 사람들의 속셈은 무엇인가. 불굴의 사명감 때문인가,정치 우위의 풍토병 탓인가.
땅투기해 돈벌었다는 사람,이런저런 이유로 관직을 물러난 사람,권력주변을 맴돌며 설치기 좋아하는 사람­. 정당의 공천경합자 또는 매스컴의 출마예상자 명단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올라있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사회가 정치과잉에 시달리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국회의원직은 어떤 간난을 무릅쓰고라도 쟁취할만한 가치가 있는 자리인가. 대접받고,출세했단 소리듣고,이권에 개입할 수 있는 특권이라도 보장되어 있단 말인가.
새로운 정치모임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어도 납득하지 못할 구석이 많다.
기성정치가 불신을 받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를 표방할 수는 있지만 힘을 모으기 위해 이질적인 그룹이 손을 잡는다면 그것은 야합에 지나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합이 기성정치와 다를게 무엇이겠으며 그런 야합이 어떤 새모습을 보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에 대한 편견과 착각을 갖고있다. 수백년에 걸친 정치전통과 해방후 펼쳐진 의정사가 우리의 의식구조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권력과 돈,그리고 명예에 접근하는 지름길이 바로 정치라는 고정관념이 우리몸에 알게 모르게 배어있다. 우리사회에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유달리 큰 것도 이같은 전통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본다.
그러나 이같은 인식과 전통은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정치의 선진화와 국제화에 큰 걸림돌이 되고있다. 아니,꼭 극복해야만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정치가 사회의 온갖 기능과 분야에 부당하게 개입해 힘을 발휘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며 전근대적이다. 때문에 행정에서,경제에서,그리고 생활에서 정치의 비중을 줄여가는 것이 곧 정치선진화로 가는 첩경이다. 이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도약도,국력의 효율화도 어렵다.
다시말해 온국민이 나서서 정치의 무단 영역침범을 막자는 얘기다. 정치인도 무수히 많은 영역중 하나를 맡는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그들에게만 유독 큰 목소리를 허용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정치인들이 특출한 역할을 자부하지 않아도 우리사회는 굴러가게 되어있다.
이렇게 되자면 먼저 기성정치인들도 비뚤어진 사고와 행태에 대해 각성해야 한다. 얼굴 두껍고 무책임하고 재충전을 위한 휴식도 없이 끊임없이 내닫는 것,목전의 이익에 돌진하는 것이 정치의 대명사여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정치가 사회 갈등 해소와 경제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치인들의 절제되지 않은 권력추구가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시각이 권위주의 시대와는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합리주의가 뒷받침 되지 않는 민주화 주장은 허구라는 것 쯤은 누구나 눈치챈다. 민주화 시대에 맞는 정치의 질과 양이 새로 계량되어야 한다.
정치와 정치인이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지도,과소평가 되지도 않는 사회분위기는 노력여하에 따라 앞당길 수 있다고 믿는다. 바로 내년에 있을 몇차례의 선거가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선거의 주체는 국민이요,유권자들 자신이다. 누구에게 미루어서는 안된다.
실속없이 덤비거나 돈과 권력을 매개로 접근해오는 사람은 가차없이 도태시켜야 한다. 반대로 전문성·도덕성을 신뢰할만한 인물들은 찾아서 밀어주어야 한다. 이 모두가 국민이 해야할 일이다.
우리는 여당의 관료성,야당의 사당성이 유능한 신인의 등장을 제약하고 있는 현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정당의 이같은 병폐가 치유되지 않으면 세대교체,미래지향의 정치풍토는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국민들의 권력관을 바꾸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민주화된 권력」이란 국민과 정치인간에 한시적으로 위임·계약된 것에 불과하다. 계약의 이행을 더 큰 권력획득,유지의 방편으로 이용하도록 눈감아주는 것은 국민들이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아울러 정치우위의 분위기를 바꾸는데는 각계 각분야,특히 경제·사회단체 스스로가 민주화·내실화를 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각종 이익단체나 사법부,언론이 정치과잉과 편중에 그때그때 제동을 거는 것도 유효한 수단이 되리라 본다.
정치가 결정권을 과점해 과도한 목표지향을 선도하던 시대는 분명 지나가고 있다. 정치의 역할을 적절히 다시 자리매김 하는 일에 우리 모두 「나부터,지금부터,작은일부터」 동참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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