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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총선 녹색당·극우파 부상/24일 실시 선거결과 분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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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존 정치이념에의 싫증을 반영/마르텐스 연정은 계속 유지될듯
24일 벨기에에서 총선거가 실시됐다. 선거결과는 기존의 주요 정치세력들이 예외없이 기반을 크게 잃고 이민문제에 대해 강경자세를 견지하는 극우정당들과 환경문제를 이념으로 내세우는 환경보호그룹등 새로운 정치과제를 제시하는 정당들이 크게 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투표수의 75%가 개표된 결과 총2백12석 의석중 플라망계와 왈론계의 기독교 사회당 및 사회당 등 연립정부 참여 4개당의 의석이 14석 감소한 1백20석을 차지했으며 제1야당인 플라망계 자유당이 1석 는 26석,왈론계 자유당이 3석 준 23석을 각각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크게 의석수를 늘린 플라망계 극우정당 블람 블록은 12석 늘어난 14석을,왈론계 환경보호그룹은 7석 늘어난 16석을 차지했다.
이같은 결과는 벨기에 국민들이 기존 정당들이 제시했던 정치이념과 그들이 제시했던 정치적 과제들에 대해 싫증을 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벨기에는 인구 1천만명중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 플랑드르지방 중심의 플라망인 55%,프랑스어를 쓰는 남부 왈론지방 중심의 왈론인 35%,독일어를 쓰는 주민 약0.7%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다민족국가다.
따라서 플라망인과 왈론인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잘 순화시키느냐는 것이 이나라가 안고있는 숙명적인 정치적 과제다.
이같은 점은 집권 기독교사회당 및 기사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당,야당인 보수계 자유당 등이 모두 플라밍계와 왈론계로 나뉘어 개별정당으로 존재하는 것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정당이 난립한 상황에서 철저한 비례대표제를 채택함으로써 의석과반수를 차지하는 단일정당이 없는 것도 벨기에 정치의 특징이다.
벨기에 정치세력들은 민족갈등이라는 숙명적 과제를 타협과 지방분권화 전략,다시 말해 주요 정당들간의 연립정부구성과 급진적인 연방제 추진으로 소화시켜 왔다.
빌프리드 마르텐스 총리는 지난 79년 집권한 이래 9차례의 연립정부를 이끌어 오면서 80년과 84년 두차례의 개헌을 통해 지방분권화를 강화시켜 왔고 지난 87년 선거이후 또 한차례의 개헌을 추진해 오고 있다.
이번 선거실시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과도한 분권화 전략이 발단이 됐다. 연립정부내 플라망계 장관들이 왈론계 지역 기업들의 대중동 및 아프리카 무기수출 승인을 거부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왈론계 장관들은 중앙정부가 플라망계 기업들의 통신시설을 구입하는 것을 방해했다.
이 과정에서 마르텐스 총리는 분권화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왈론계 기업들의 무기수출을 승인했고 이에 반발,플라망계 장관 2명이 사퇴하자 마르텐스 총리가 책임을 지고 사임함으로써 총선이 실시된 것이다.
선거결과는 전후 46년동안 36개의 정부가 들어설 정도로 계속된 민족간 대립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을 잃고 11%에 달하는 실업문제와 관련,북아프리카와 터키의 이민을 규제하자는 블람 블록당,환경문제를 중시하는 환경보호그룹등 과거 미미한 지지밖에 받지 못하던 정당들을 주요 정치세력으로 만들어 국민들의 관심사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집권세력은 기반이 약화됐지만 계속적인 집권이 확실시되고 있다.
유럽 최장수 총리인 마르텐스 총리도 계속 총리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마르텐스 총리는 새연립정부를 구성하는데 있어 그 어느때보다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진 세력구도속에서 한 배를 탈 동반자를 구한다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마르텐스 총리는 지방정부에 보다 많은 권한을 이양하는 새로운 개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개헌을 위해서는 연립정부내에 의석 3분의 2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번 선거결과는 이같은 일을 지극히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 87년 선거뒤 마르텐스 총리는 연립정부 구성에 1백일 이상을 소비해야 했다.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더 긴 정치공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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