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총장 위상 높여줄 일벌레/유엔의 새 얼굴 「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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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동회의 중재자로도 적임/모든 분쟁서 평화적 해결방안 추구
21일 안보리에 의해 차기 유엔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이집트 부총리는 역대 어느 총장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분석된다.
유엔은 1백66개 회원국을 가진 거대한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실권이 없는 국제기구였던데 비해 최근 걸프전사태와 캄보디아문제 해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위상이 높아졌다.
아울러 탈냉전으로 미·소 대결구조에서 대결과 국제질서 운영의 파트너 소련을 잃은 미국이 그 대역을 유엔으로 대치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특히 현 국제 현안중 최대숙제가 되고 있는 중동문제의 해결에 있어 아프리카 국가이면서 아랍국가인 이집트출신이라는 점 때문에도 그의 중요성과 역할은 더욱 커지게 돼있다.
안보리이사국의 3분의 2이상 지지와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가 없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15개 이사국중 찬성 11표,기권 4표의 압도적 표차로 안보리 추천을 받은 그는 형식적인 총회승인절차만 남겨놓고 있어 내년 1월1일자로 페루출신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현 총장에 이어 제6대 사무총장이 될 것이다.
69세의 노련한 외교가 갈리씨는 이집트 외무부에 몸담기까진 국제법 교수로서 수백권의 책을 쓰는등 쉴줄 모르는 일벌레로 소문이 나있다.
연봉 18만5천달러(한화 약 1억4천만원)의 사무총장직을 맡게될 갈리씨는 이집트 외무차관으로 있을 당시인 79년 외무장관과 아랍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다트 대통령을 움직여 미국이 주선한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인 캠프데이비드협정이 성사되는데 기여,이번 중동평화회의에서도 중재자로 적임자라 할 수 있다.
이집트의 독특한 콥트 가톨릭 신자로 유대인부인을 두고 있는 갈리씨는 생태·환경문제가 세계적인 이슈가 되기 훨씬전부터 앞으로 아랍·아프리카 국가들이 직면할 물부족이 정치문제 못지않게 이 지역 안정을 해칠 문제로 보고 나일강 유역 9개 국가들간의 수로이용협상을 주도해왔다.
지난해 걸프위기때는 미국이 주도한 반이라크연합 형성에 끈기있는 노력과 지원을 보냈으며 연합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자 전후해결책으로 범아랍의회와 아랍국가들 사이의 부의 분배를 위한 아랍석유은행 창설 등을 제안,아랍세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노력해왔다.
자신의 어떤 제안이 성취되지 못해도 항상 또다른 제안을 제시할 준비를 하며 모든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희망을 잃지 않는 갈리씨는 유엔의 역할확대가 기대되는 21세기 유엔모습을 여러 안보리 회원국들에 제시,긍정적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그의 통솔하의 유엔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활력있는 기구로 변신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영·불·아랍어 등 3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갈리씨는 그러나 고령을 이유로 물러나는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현총장보다 나이가 불과 한살아래라는 고령이 이번 추천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듯이 연령때문에 5년단임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며 재임중 건강이 나빠질 경우 유엔기능이 오히려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아울러 사무총장 선출에 지역적 고려가 배제돼온 유엔에 그의 선출과정을 계기로 형성된 일부 지역분파적 분위기가 범세계적 기구로서의 유엔역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그의 선출이 확정되는 순간 유엔의 아중동국가등 제3세계국가 대표들은 드러내놓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문제에 관한 그의 입장은 명시적으로 표명된 바 없으나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어온 이집트내에서 영사관계에 있는 한국과의 국교수립을 주장해왔고 한국도 방문한 친한적 인사인 것은 확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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