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의원 줄여야 한다/이수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최근 서울대 이명현 교수가 텔리비전의 좌담회에 참석,국회의원들을 「범법자」라고 불렀다고 해 세간의 화제를 모으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박준규 국회의장,김종호 민자·김정길 민주당 원내총무 등 국회 수뇌부가 이교수문제에 대한 대책회의까지 열어 사과를 요구하는 공한을 보냈다.
점잖은 국회의장이 부르르 떨만큼 국회의원 전체를 범법자라고 매도한 이교수의 지적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안을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들이 국민들로부터 어떤 자리매김을 당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나라의 선진을 뒤로 잡아당기는 사람들,불법과 탈법을 일삼으며 허구한 날 권력다툼의 놀이에나 빠져있는 특이체질의 소유자들 쯤으로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을 보고 있는 경향이 없지도 않다.
여론조사에서 국회의원이 가장 덜 존경스럽거나 나라발전에 걸리적거리는 대상군의 맨첫머리에 꼽혀져온 것만 봐도 그렇다.
실정이 이러함에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야의 국회의원선거법 협상을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정말 답답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스스로 범법하지 않고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제도개선에는 여야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음이 그 하나다. 정당의 탈법선거 가능성을 열어놓거나 불법·부정소지가 많은 법조항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이 협상과정에 여야가 국회의원수를 늘리려고 하는 조짐이 보이고 있어 아연할 수 밖에 없다. 지역구의 인구변동으로 불가피하게 선거구를 늘리게 됐는데 전국구 의원수는 그대로 두는 쪽으로 얘기가 오가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 것이다.
역대 여야수뇌부가 전국구 도입 본뜻과는 거의 무관하게 봐주어야 할 사람들이나 정치자금을 많이 낸 사람들을 논공행상식으로 전국구의원으로 발탁해 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전국구가 아닌 「전(돈)국구」란 비아냥은 이를 잘 설명한다.
14대 총선거라고 해서 여야가 이 관행을 깨고 법정신대로 직능대표성을 살릴 것이라고 보는 국민들이 있다고 여야 수뇌부가 생각한다면 한참 민심을 모르고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도 여야간에 막후 담합이 오간다면 정말 문제다. 국회의원수가 현재의 수준(2백99명)을 넘어서는 안되고 제구실 못하는 전국구는 더 줄여야 한다는게 국민정서임을 여야 수뇌부는 알아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