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츠 - 럼즈펠드 '극과 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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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미국 국방부에서 도널드 럼즈펠드(사진(左)) 전 장관의 그림자가 지워지고 있다. 실용주의자로 알려진 로버트 게이츠(63.(右)) 장관이 네오콘(힘의 일방외교를 중시하는 신보수주의자)의 핵심인 럼즈펠드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직후 경질된 럼즈펠드에겐 '군림하는 장관'이라는 평이 따라다녔다. 1970년대 중반 이미 국방장관을 지낸 그는 외교.안보 분야에 관해 자기 확신이 아주 강한 인물이었다. AP통신은 최근 렉싱턴 연구소의 군사전문가인 대니얼 구어의 말을 인용, "럼즈펠드는 국방부의 모든 이들에게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smart)는 걸 인식시키려고 했다"고 보도했다. 그런 럼즈펠드는 부하의 말을 듣기보다 지시하고 명령하는 스타일로 국방부를 운영했다.

12일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럼즈펠드는 '탱크'라고 불리는 합동참모본부의 브리핑실을 경멸했다. 그는 그곳을 찾지 않고 장관 회의실로 군 지휘자들을 부르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반면 게이츠는 직접 '탱크'로 가서 군의 고위 관계자들과 만난다고 신문은 전했다. AP통신은 "게이츠는 전투적인 럼즈펠드보다 쌍방향적인 대화를 훨씬 많이 한다"고 보도했다.

럼즈펠드의 국방부는 오만했다.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즉각 인정하지 않고, 뭉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2일 "럼즈펠드는 부하들이 실수를 저질러도 당사자들을 문책하기보다는 감싸줬다"며 "자신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까봐 그런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이츠는 잘못에 대해 국방부가 책임을 지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라크전에서 부상한 장병을 불결한 환경 속에서 날림 치료를 한 월터 리드 육군 병원 스캔들이 터지자 즉각 육군장관.육군의무감.병원장을 경질했다. AP통신은 "게이츠가 럼즈펠드처럼 방어의 본능에 매달리는 대신 단호함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뉴욕 타임스는 "국방부의 정보수집과 관련한 럼즈펠드의 방식도 시정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전을 주도한 럼즈펠드는 "전쟁에서 이기려면 국방부의 정보력이 강화돼야 한다"며 해외 곳곳에 국방부 정보팀을 파견했다. 그러나 현지의 미국 대사나, 중앙정보국(CIA) 책임자도 모르게 요원들을 보내 국무부와 CIA 등의 불만을 샀다. 그로 인해 정부 부처 내에서 정보의 통합.조정 기능에도 문제가 생겼다.

CIA 국장 출신인 게이츠는 국방부 중심의 비밀주의를 고집하지 않아 정보를 다루는 기관들 사이에 균형이 이뤄지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그래서 국방부에선 "게이츠는 반(反)럼즈펠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뉴욕 타임스는 "게이츠가 취임 직후 국방부 내에서 언론보도 시정 등의 업무를 맡은 특별홍보팀을 해체했다"고 밝혔다. 럼즈펠드 재임 시절 민주당 의원들은 이 팀을"한 사람의 평판만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라고 비난했었다. 그걸 없애는 등 럼즈펠드의 유산을 정리하고 있는 게이츠를 민주당에선 "신선한 공기"(빌 넬슨 상원의원)라고 부르며 호감을 나타내고 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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