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민기자의가정만세] 띠동갑 연하남까지! 골드 미스의 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A의 얘기를 두 전문직 여성과의 점심식사 때 꺼냈다. 두 사람은 서른여덟 살과 마흔한 살 싱글. 각각 '대표'와 '이사' 명함을 지녔다. 자기 분야에서 발도 넓고 성격도 시원시원한, 이른바 '골드 미스'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보인 반응은 소심 그 자체. "세상에, 그게 가능하단 말이에요?"

이제는 술안주거리로도 식상한 연상녀 연하남 커플. 그럼에도 대중가요 노랫말에 등장하는 '누난 내 여자니까'식의 만남은 여성이 결혼적령기를 크게 넘지 않은 범위에서 가능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현실보다 딱 반 템포 정도 앞서간다는 드라마 속 설정도 대체로 그러지 않았던가. 아홉살 연하남의 구애를 받는 '여우야 뭐하니'의 고병희(고현정)도 극중 나이는 33세였다. 두 골드미스의 소심함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도 결혼에 한해서는 유독 '여자 나이'를 따지는 세상 탓이 아닐까. 싱글녀 A의 '50대 늙은이' 운운하는 응수는 그래서 더 유쾌하다.

두 사람을 만난 며칠 뒤. 유명 여성 드라마 작가(46)가 비밀 결혼식을 올린 사실이 알려졌다. 방송사 프로듀서인 신랑은 드라마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12살 차이, 띠동갑 연하였다. 한 모임에서 이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다들 이 커플의 탄생 배경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을 해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결론은 대강 좁혀졌다. "여자가 능력이 있으니 그렇지, 이유는 무슨 이유." 그러고 보니 그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시청률 1위 드라마가 대체 몇이었던가.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결혼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장벽은 만만치 않다. 부모의 반대는 대부분 각오하고 있는 사항. 나이 차이가 심하게 나는 경우 부모의 반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실제보다 줄여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1997년 중앙일보에 실린 '연상녀 연하남' 기사다. 겨우 10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제는 띠동갑 연하까지 등장했다. 나이 차도 속이지 않는 분위기다. 아직도 '여자 나이' 어쩌고 하는 사람들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골드 미스들, 이제 욕심 좀 더 부려보심이 어떨지. 나이는 숫자일 뿐이니.

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