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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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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을이 깊어간다. 노란 새짚으로 곱게 단장한 초가지붕들. 나이가 좀든 한국인들의 가슴속에 묻혀있는 늦가을 고향 정경이다.
지금쯤이면 추수가 다 끝나고 볏짚으로 지붕을 새로 이는 집단장이 한창일 때다. 해마다 새짚으로 노랗게 단장되면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초가마을은 모든 한국인의 고향이었다. 밤이면 그 고운 모습의 지붕위로 푸른 달빛을 가르며 날아가는 기러기떼들의 울음소리가 바람소리와 어울려 전원교향곡을 이루고….
볏짚은 농한기에 삼태기·역둥구미·씨오쟁이·연장망태기 등의 생활용구를 만드는 재료가 되기도 했다.
짚으로 만든 각종 민예품이나 「고싸움놀이」같은 마을축제때 사용하는 새끼줄은 서민들의 생활문화로 전통공예와 함께 일상적인 삶과 연계된 아름다움의 결정체였다.
장인정신의 산물인 전통공예는 우리 조상들의 정신이 짙게 배어있는 생활문화의 소산이다. 외국문물의 갑작스런 일방적 수용과 농경사회로부터 공업사회로 넘어가는 사회변혁속에서 빚어진 가치체계의 혼란으로 소중한 우리문화전통들이 날로 상실돼 가고있다. 전통공예는 이제 옛시대의 낡은 유산으로까지 치부되는 상황이다.
조상대대로 전수해온 나전칠기도 외제수입가구와 일제칠기에 밀려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일본과 중국의 나전칠기 장롱·문갑·화장대등이 지난해부터 올해 3월까지만도 1백만달러어치나 수입해 들여왔다.
『해동역사』는 「백제 서남해 3도에서 채취한 황칠로 칠한 칠기물은 황금과 같으며 그빛깔은 사람의 눈길을 끈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우리의 칠기를 「신라칠」「고려칠」 이라해서 최상품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같이 탁월 했던 우리의 칠기문화와 푸근한 짚문화가 마음의 고향에 묻혀진채 그몰골이 여위어만가고 있다.
마침 한 시인이 10여년동안 모은 짚민예품들을 내놓은 「짚문화특별전(국립민속박물관)」과 인간문화재 및 전수자들이 출품한 전통공예전(서울 강남 전통 공예전수관)이 열려 늦가을의 고향 정취를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삶의 뿌리와 선조들의 슬기를 이어받은 이런 전시회를 한번쯤 돌아보는 여유는 아직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이은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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