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실험과 창작열기|신선한 공연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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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서울연극제가 끝난 만추무대에 이색공연들이 속속 등장, 실험과 창작의 열기를 내뿜고 있다. 올해 연극계는 정부의 「연극의 해」지정과 재정지원으로 어느해보다 풍성했지만 이색과 실험은 상대적으로 「풍요속의 빈곤」이었다.
연초 「사랑의 연극잔치」에서 「서울연극제」로 이어지는 행사속에서 이색과 실험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연극계는 정부지원이라는 호재를 연극중흥의 계기로 삼자는 의욕에 가득찼지만 실제공연은 흥행과 실익(?)위주로 치우쳤다. 따라서 올해는 유난히 히트작 재공연이 많았고 무리를 해서라도 인기탤런트를 캐스팅하려는 시도들이 많았었다.
당연히 히트작과 탤런트주연 공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연극의 대중화에 기여는 했다. 하지만 연극작품으로 호평을 받은 공연은 여러가지 실험을 시도한 작품들이었다.
「연극의 해」 대형행사로 메워졌던 공연장이 한가해진 사이 몰려나온 이색무대는 흥행을 크게 의식하지 않은 것들이지만 연극팬들의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놓치면 다시 보기 힘든 이색창작물 이어서다.
가장 이색적이며 실험적인 무대는 춤과 연극의 접목을 시도한 『그대, 거기 왕관을 쓰고 서있어도』가 꼽힌다. 춤꾼들이 모여 만든 극단「숨·4323」의 창단공연으로 서울예전교수인 강만홍씨가 작품을 쓰고 연출했다.
『그대, 거기…』는 극히 비일상적 세계인 신비의 세계, 신성체험을 무대화 하고자한 실험작이다. 왕관으로 상징되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무한 욕망이 결국 연쇄살인의 과정을 거쳐 파멸로 이르는 과정을 춤으로 그려낸다. 대형 부적이 걸리고 무대중앙에 흙더미가 쌓여있으며, 자욱한 향연기속에 의미를 알수없는 탁음의 주문이 중얼거려지며 공연이 시작된다.
잘 훈련된 춤사위가 강렬하게 이어지고 대사는 거의 없다.
연극이라기보다 무용에 가깝다. 하지만 연극으로 변용될 수 있는 춤의 실험으로 연극연기면에서 몸동작의 탁월함을 보인다. 12월l9일까지 충돌소극장. (743)7778.
○…연극연출가협회에서 주최하는 「브레히트 워크숍」도 새로운 시도다. 브레히트작 『코카서스의 하얀 동그라미 재판』이라는 하나의 작품을 5명의 연출가가 각각 다르게 만들어 공연한다. 참가연출가는 이상자·유중렬·채승훈·정진수·채윤일씨 등이며 신인연기자 1백여명이 다섯가지 공연에 등장한다.
워크숍인만큼 연기자 재훈련의 의미가 강조되었지만 중견연출가들의 연출을 비교해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으로 초연되는 작품이라는 점도 관심을 끈다. 12일부터 21일까지 매일 오후4·7시 문예회관소극장. (766)4866.
○…배우협회가 극단 「현대예술극장」과 공동제작하는 『출세기』는 협회창립기념 배우들의 잔치마당으로 준비된만큼 유명배우들이 총동원된다.
주인공은 극단 「민중」출신탤런트 길용우와 윤석화가 맡았지만 원로배우 고설봉, 박웅·최불암·박정자·윤소정씨등이 단역으로 출연해 무대의 격을 높인다. 15일부터28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 (764) 5087.
○…대학로극장이 매주 토요일밤 10시 최규호의 팬터마임 『먹고삽시다」』를 공연키로 한것도 이색적인 시도인데 특히 보기 힘든 팬터마임을 상설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764)6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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