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선의역사를바꾼명차] '차 시대' 개막 알린 벤츠 3륜 자동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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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독일의 기술자 칼 벤츠는 1879년 자동차용 0.75마력의 소형 가스엔진을 발명했다. 가난과 연속된 실패로 얼룩진 10년의 연구 끝에 이룬 성과였다. 그리고 이 엔진을 얹어 달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데는 또 다른 7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1885년에야 그는 오늘날 자동차의 시조를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벤츠는 당초 4륜 자동차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스티어링 시스템에 대한 자신이 없어 두 개의 커다란 뒷바퀴와 수직 핸들대에 수평 레버가 달린 오늘날의 자전거와 흡사한 스티어링 구조인 3륜 자동차(사진)를 만들었다. 1885년 가을 벤츠의 연구소가 있던 독일 만하임에서 열린 시험운전에서 벤츠의 자동차는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면서 100m를 무난히 주파했다. 1886년 1월 29일 'DRP 374535호'라는 특허번호가 주어졌고, 그해 6월 독일의 일간신문은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하지만 도저히 상품화할 수 없다고 판단한 벤츠는 마을 안을 시험장 삼아 2년간 실용화작업을 했다. 아내 베르타 링게는 남편의 소극적인 시험에 불만을 품었다. 1888년 가을 벤츠가 깊은 잠에 빠진 새벽, 링게는 13, 15세의 두 아들과 함께 96㎞나 떨어진 포츠하임의 친정집까지 차를 몰았다. 조그만 쇠 마차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스스로 달려가는 것을 생전 처음 본 여러 마을 사람들은 기절초풍했다.

자동차는 험한 시골길을 견디지 못해 여기저기 고장이 났다. 세 모자는 이를 고치느라 기름과 먼지투성이가 된 채 어두워져서야 가까스로 친정에 도착했다.

이튿날 전보로 이 소식을 들은 벤츠는 눈앞이 캄캄했다. 일생을 바쳐 발명한 자동차가 다 망가졌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화가 나 곧장 처가로 달려갔다. 하지만 자동차가 크게 부서진 데 없이 굴러가는 것을 보고 기쁨과 희망이 솟았다.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장거리 로드테스트를 연약한 여자와 아이들이 해냈다는 사실과 자동차가 치명적인 고장 없이 먼 거리를 끝까지 달려 주었다는 기적에 용기를 얻었다. 이 때문에 링게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로드 테스트한 여인이자 최초로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한 여인, 그리고 자동차를 선전한 최초의 세일즈맨으로 남았다. 후세는 그를 '자동차의 어머니'라 불렀다.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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