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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두렵기 때문에 중일전쟁 하고 싶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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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나사변(중일전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소비에트(소련)가 두렵기 때문이다."(1942년 12월 발언)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왕 히로히토(裕仁.연호는 쇼와.昭和.사진)의 솔직한 심정이 담긴 기록이 발견됐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9일 보도했다. 당시 시종이었던 오구라 구라지(小倉庫次) 전 도쿄도립대 법경학부장이 39년 5월부터 45년 패전까지 일왕을 모시면서 들었던 일왕의 발언을 일기 형식으로 적은 자료다. 이 일기는 히로히토 일왕이 군부가 일으킨 전쟁을 내심 불쾌하게 생각했었다는 학설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기록에 따르면 히로히토 일왕은 일본이 본격적으로 군국주의 길로 나아간 중일전쟁에 대해 "지나(중국)가 의외로 세다. 모두 예측을 잘못했다. 특히 전문가인 육군조차 관측이 틀렸다"(40년 10월) "일본은 중국을 얕봤다. 빨리 전쟁을 끝내고 10년간 국력을 충실히 다지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41년 1월)고 말했다. "만주사변을 추진한 이시하라 간지(石原莞爾) 소장을 영전시키자는 육군대신의 알현을 받고 난 직후, 큰소리로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하시며 인사를 쉬이 재가하지 않았다"는 표현도 일기에 나온다.

히로히토 일왕은 일본이 독일.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체결한 데 대해서도 불쾌감을 표시했다. 39년 10월 동맹을 추진한 시라토리 도시오(白鳥敏夫) 주 이탈리아 대사가 귀국해 보고하려 하자 히로히토 일왕은 "내키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오구라는 기술했다.

하지만 전쟁에서 필승의 의지를 다지는 듯한 발언도 발견됐다.

진주만 공격 후 한때 일본의 전황이 우세했을 무렵인 41년 12월에는 "평화를 회복하고 난 뒤에는 남양(南洋.남태평양을 말하는 듯)을 보고 싶다. 일본의 영토가 되면 지장이 없을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그는 또 42년 2월 "전쟁을 시작할 때까지는 심중(深重)하게, 시작하고 나면 철저히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히로히토는 일본 패전 후 신격(神格)을 부정하는 '인간선언'을 하는 대신 연합군에 의한 전쟁 책임 추궁을 면했다.

학계에서는 히로히토 일왕이 제2차 세계대전의 최종 책임자라는 설과 함께 실제로는 전쟁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군부에 이끌려 전쟁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상반된 학설이 퍼져 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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