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첨단군사기술 미 종속 우려/한미 특허보호협정 가서명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특허 민간이용 금지… 목록조차 공개 못해/기업 연구의욕 봉쇄 국회비준 논란 클듯
한미간에 4년여간 현안으로 남아 있던 특허비밀보호협정(PSA)이 6일 타결됐다.
이로써 지난 87년 10월 이후 폐기된 한미과기협정이 다시 체결될 수 있는 길은 열렸지만 국회 비준과정에서 PSA가 갖고 있는 불리한 조건들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협정은 「긴밀한 군사 안보 협력관계에 있는 우방간에 군사상의 발명과 기술을 상대방 국가에 특허로 출원할 경우 접수국은 이를 일정기간 공개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특례적인 공업소유권에 관한 협정」이다
특허를 등록하면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국방상 대외 비밀을 요하는 군사적 발명과 기술에 대해서는 특허를 보유하되 비공개로 관리해 그 기술이 적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한다는 것이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미국이 이 협정의 체결을 한국에 요구한 것은 지난 87년 4월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전략방위계획(SDI)에 한국의 참여를 요청하면서 그 전제조건화 하면서부터라고 밝혔다. 미국은 그해 10월에 만료되는 과학기술협정도 PSA와 연계시켜 자동 폐기시켰다.
미국이 이런 요구를 한 배경에는 한국이 각종 첨단 기술분야에서 성과를 보여 미국의 비밀기술을 사용할 능력을 지니게 돼 더 이상 제한 없이 방치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는게 우리쪽 관측이다.
미국과 그동안 협상과정에서 가장 큰 이견을 보인 것은 접수국이 비밀특허를 사용할 수 있는 범위였다.
한국은 비밀특허의 비밀유지는 보장하되 민간용으로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요구했으나,미국은 군사정보용 이상은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군사용과 민간용의 차이가 불분명한 현대무기의 성격상 민간용으로 이용하지 못할 경우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공산권수출제한(COCOM)목록이 전자제품·컴퓨터등 첨단기술 상품을 망라하고 있는 것이나,최근 한국이 소련에 전자교환기 설치,광케이블 설치 등에 애로를 겪은 것도 이러한 사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더구나 비밀특허의 목록조차 공개하지 않는 협정이 체결될 경우 민간기업들이 주력해야할 첨단기술 개발이 특허 출원과정에서야 이미 등록된 특허임이 밝혀질 경우 연구개발비를 전혀 보상받을 수 없어 결과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투자손실액만 늘어나고,투자의욕을 상실할 우려가 높다. 이 때문에 국내기업들은 최소한 그 목록만이라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결국 관철되지 않았다.
한국측은 마지막 타협안으로 국방용으로라도 연구개발과 제조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이 선에서 타결됐다. 이 타협안을 제시하기 앞서 외무부는 국내 여론의 반발을 고려 해 『미국은 군사정보로만 사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는 군사용 연구개발과 제조까지 요구할 것』이라고 연막을 쳐 큰 양보를 받아낸듯 생색을 냈다.
외무부는 『비밀특허로 분류하는데는 양국의 합의가 있어야 하므로 아무것이나 비밀로 묶어 민간기술 개발을 저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미 언급한 것처럼 현대 병기는 비군사적인 기술들을 집약해 이루어지고 있어 비밀특허를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는 미국측에 기술적 의존도가 커질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이들 선진국의 경우 상당수의 첨단기술이 민간기업의 상업용 상품개발과 연계돼 있어 우리 기업들은 기술경쟁에서 크게 불리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한국정부의 생각은 국영 국방산업체만이라도 그 기술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그러나 미국·일본·독일등 어느 선진국이고 민간기업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있지 않은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단지 국방목적을 앞세워 국가기관만이 이를 연구할 수 있을 경우 이들과의 기술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비밀특허는 이같은 특례협정이 체결돼 있지 않은 소련 등에서는 미국의 비밀특허에 대해 특허권을 보호해줄 의무가 없지만 이들로부터 우리가 그 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소련은 각종 군사기술을 우리에게 판매하려 하지만 민간기업이 사용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기술을 많은 로열티를 지불해가면서 도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은 많은 경우 기술도입이 사실상 봉쇄돼 첨단기술의 대미종속을 탈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김진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