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선 호랑이 백호' 낸 만화가 안수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호랑이 만화로 이름난 만화가 안수길(40)씨가 초기 단편들을 모아 '조선 호랑이 백호'(자음과 모음.1만2천원)를 펴냈다. 여기에 실린 8편의 작품은 1990년대 초 국내 만화잡지에 발표했던 작품들로, 그의 선 굵고 강렬한 호랑이 그림의 원형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식민지 수탈정책의 일환으로 백두산 삼림을 마구 벌채한 일본군과 호랑이의 대결을 그린 '수해(樹海)'는 주제로나 그림으로나 이번 창작집에서 가장 묵직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의외로 익살스러운 호랑이의 모습이 적잖이 등장한다. 이리저리 아무 표적이나 쫓다가 번번이 사냥감을 놓치고 뒤늦게 깨달음을 얻는 호랑이가 있는가 하면 질펀한 짝짓기 경쟁에서 엉뚱한 짓만 거듭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는 호랑이도 있다.

"처음에는 계몽적인 생각이 있었어요. 호랑이를 통해 인간의 자연파괴를 고발하고 싶다는. 그런데 무섭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해학적인 호랑이의 모습에 더 호감이 가더라고요. 잘 보면 호랑이가 엉뚱한 구석이 많죠. 고양이과의 으뜸동물 아닙니까."

작가는 가뭄이나 삼림파괴로 먹잇감이 줄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호랑이를 '밑바닥 호랑이'라고 표현했다. 호랑이로 태어났다고 한들 매일매일 생존의 싸움을 거치지 않고 '밀림의 제왕'으로 등극할 도리는 없다는 것이다.

경북 칠곡 태생인 안씨는 고교 졸업 후 공사판과 음식점 배달일을 전전하다 80년대 중반 한재규씨의 문하생이 되면서 만화가의 꿈을 본궤도에 올렸다. 데뷔작은 다소 야한 만화였지만 이후 동물만화에 뜻을 두고 동물원을 내집처럼 들락거리다가 매료된 것이 바로 호랑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호랑이를 보면 동물원 구경 다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가장 친숙한 동물인 거죠."호랑이를 그리기 시작한 이후로 동물원 출입이 더욱 잦아졌고, 온갖 자료를 뒤적이는 작업이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한국호랑이는 이마에 임금왕자뿐 아니라 꼬리와 등의 줄무늬도 달라요. 벵골 호랑이보다 검은 줄이 적고 선명한 데다 바탕색은 더 희죠."

그의 호랑이 만화는 실은 국내 독자보다 일본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연재하던 국내 잡지가 폐간된 뒤 일본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는 도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94년 일본 고단샤(講談社)의 만화잡지'주간 모닝'에 실리기 시작한 옴니버스 만화'호랑이 이야기'는 이후 새끼 호랑이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까지 모두 8년에 걸쳐 연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호랑이 이야기'는 국내에서도 2000년 '호(虎)'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나와 그 해 대한민국 출판만화 저작상을 받았다.

최근 그는 아기 호랑이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를 탈고했다. 어린이 독자들에게도 호랑이 이야기를 보여주고픈 생각에서다. 역시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둔 안씨는 "일곱살짜리 딸이 벌써부터 만화가가 되겠다고 한다"면서 흐뭇한 웃음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그림체를 십분 살린 호랑이 도감을 준비 중이다. "한반도 어딘가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 믿으면서 그 흔적을 찾아 헤매는 분이 계세요. 저도 그분 같은 마음이죠. 한국인의 마음 속에 늘 호랑이가 자리하기를 바라는 겁니다."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