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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싸움 일삼는 방송·일부 신문 '언론=사회통합' 역할 깨달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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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서구 이성의 한계가 타자(他者)를 항상 자기 눈으로 보고, 재단하는 습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자유와 인권을 중심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를 발전시켰고,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산업화를 이룩하는 데 원천이 됐지만 이것도 여러 문제점과 독선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근대사에서 우리는 서구 이성의 산물인 자본주의.민주주의와 공산주의.전체주의를 수입했다. 이를 신봉하는 두 무리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만이 정당하다며 타인들을 총칼로 강요하기도 했다. 이 같은 비극의 정점은 한국전쟁이었다. 당시 우파든 좌파든 많은 저널리스트는 미디어가 이데올로기의 선전.선동의 도구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은 권위주의 체제가 장악했다. 이들은 산업화를 최고의 목표로 내걸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타인의 목소리를 몽둥이와 채찍으로 눌렀다. 이 같은 상황의 분수령이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 많은 미디어는 침묵했다. 또 많은 언론인이 해직당하고, 많은 미디어가 통폐합했다. 1987년 6월 시민항쟁을 통해 민주세력이 승리했다. 이후 오히려 헤게모니와 기득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이 과정에서 최루탄과 몽둥이가 중심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됐다. 미디어계도 정파 저널리즘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양金의 시대를 거쳐 노무현 대통령 시대로 들어서면서 민주주의는 신장돼 왔으나 사회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 같다. 민생을 챙겨야 할 청와대와 국회가 보이고 있는 모습은 어떻고, 제1당의 대표가 하고 있는 단식이라는 소통 방식은 어떤가. 사회가 온통 꽉 막혀 숨막힐 정도다. 그러나 이 땅에는 네 편도 내 편도 아닌 제3자, 중도와 리버럴, 중산층의 사람이 더 많다.

이들은 줄서기를 거부하고 있다. 선진 외국의 정부와 정당들은 '이들이 잘살아야 나라가 잘된다'고 외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 중심의 정책과 공약을 내놓고 있다. 미디어들도 이들을 중심 독자와 시청자로 보고 편집.제작하고 있다.

대한민국 커뮤니케이션의 몸통 격인 메이저 신문과 방송은 어떤가. 서로를 외면한 채 반목을 일삼고 있다. 서로 '때리기 대회'라도 하는 것 같다. 사회적 반목을 갈등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야 할 주류 미디어가 오히려 이를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이 땅의 많은 미디어는 잘못된 서구 이성의 원귀를 떨치기 위해 진혼굿이라도 한판 벌여야 할 것 같다.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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