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맑은 물은 흐른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세상이 한없이 혼탁해 보인다. 어느 한곳 안 썩은데가 없고 어느 한 사람 온전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같게만 느껴진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사회가 제 풀에 주저앉아 붕괴돼버리는게 아닌가하는 우울한 생각마저 드는 오늘이다.
격변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우리들은 고비고비마다 이러한 위기감에 사로잡혔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래도 사회는 썩어 문드러지지는 않았다.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느낄 정도로 힘겹기도 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한걸음,한걸음씩 발전을 이룩해오기도 했다.
우리들의 진단이 잘못되었고 지나치게 비관적이었던 탓이었는가. 아니다. 분명히 긴박한 위기들은 여러차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을 그 위기때마다 구해주고 사회를 지탱해준 그 기이한 힘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우리들은 그 의문에 대한 한가지 해답을 누가 알아주건 말건 묵묵히 맡은바의 일에 충실하면서 주위를 위해서도 헌신적인 봉사를 아끼지않으며 살아가고 있는 공직사회의 숨은 일꾼들에게서 발견한다.
중앙일보와 내무부가 공동 추천하는 제15회 「청백봉사상」 수상자에 대한 시상식이 5일 오전에 있었다. 이날 상을 받은 18명의 수상자들은 중앙일보와 내무부가 전국의 공무원가운데서 「청백」과 「봉사」의 표상으로서 발굴한 인물들이다.
이들 가운데는 하급 공무원의 박봉에서도 자신보다 더 딱한 사람을 보면 주머니 털기를 서슴지 않았던 사람도 있고,주민의 애로사항을 스스로 찾아나서 해결해 주어온 사람도 있다. 또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종이 한장이라도 아끼는 식으로 예산을 절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창의성을 발휘하여 행정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인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공무원들의 공적 내용을 살피노라면 우리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하는 길이 결코 어렵고 먼데 있는 것만은 아니란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사회가 건강하려면 법과 제도가 올바르지 않으면 안된다.
또 상대적으로 더 큰 권한과 책무를 지닌 사회지도층이 귀감이 될만한 행동의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올바른 법과 제도,지도층의 솔선수범도 결국은 그것이 다수 사회구성원들에 의해 지지될 때에만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때 사회의 건강에 대한 책임은 우리들 평범한 시민 개개인들에게도 있는 것이다.
흐린 샘물을 깨끗이 하려면 흐린물을 퍼내는 것보다는 맑은 물이 계속 흘러들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듯이 공직사회를 맑고 건강하게 하는 지름길도 이번 수상자들과 같은 「청백」하고 「봉사」적인 인물들이 더 많이 나와 지탄받는 공무원들을 양적으로도 압도하는데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곳곳에 위기를 알리는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더구나 시기적으로 정권의 말기여서 그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공직사회 곳곳에 이번 수상자와 같은 일꾼들이 자리잡고 있는 한 우리 사회는 또다시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해나가리라 믿는다. 중앙일보는 그런 낙관속에서 앞으로도 공직사회의 숨은 일꾼들을 찾아나설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