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만 바꿔 꽂으면 모든 폰이 내 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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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차를 몰고 친구들과 야유회를 가기로 한 대학생 A씨. 출발하는 날 아침 내비게이션 기능이 있는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빌렸다. A씨는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식별카드를 빼내 아버지 휴대전화에 끼웠다. 식별카드를 바꾸면 전화번호는 물론, 신용카드 정보 등도 고스란히 넘겨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3세대 휴대전화(WCDMA.광대역 코드분할다중접속) 서비스에선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장면이다.왜 이렇게 할 수 있을까.WCDMA 서비스의 가입자 확인 방법이 2세대 휴대전화 방식(CDMA.코드분할다중접속)과 달라서다. CDMA는 단말기마다 고유번호를 준다. 때문에 다른 사람이 쓰는 휴대전화로는 새 번호로 통화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단말기를 바꿀 때마다 꼭 대리점을 방문해야 한다. 이와 달리 WCDMA 서비스는 단말기 뒷면에 부착된 '다기능 가입자 식별(USIM) 카드'로 가입자를 확인한다. 이동통신회사가 USIM 카드에 아무런 제한을 걸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의 WCDMA 단말기에 이 카드를 꽂기만 하면 자신의 휴대전화처럼 사용할 수 있다.

WCDMA 방식을 쓰는 유럽에선 이동전화 대리점에서 USIM 카드를 받아 전자제품 대리점이나 할인점에서 구입한 휴대전화 단말기에 끼워서 쓴다. 한 사람이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갖고 필요에 따라 식별카드를 꽂아 쓰는 게 가능하다. 선불형 USIM 카드를 사 일정 기간만 쓸 수도 있다. 휴대전화 서비스 가입과 이용 방식이 다양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USIM 카드를 자유롭게 바꿔가며 쓸 수 없다. SK텔레콤과 KTF가 식별카드를 한 단말기에서만 쓰도록 잠금장치를 걸었기 때문이다. 기존 WCDMA 가입자가 새 단말기를 사면(기기 변경을 하면) 기존 단말기의 USIM 카드를 그대로 쓰면서도 대리점에서 잠금장치를 해 예전 단말기는 식별카드를 꽂아도 통화할 수 없다. 이 때문에 USIM 카드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USIM 카드의 잠금 제한이 풀리면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문제점이 없는 게 아니다. 제한이 풀리면 통화와 문자메시지 전송은 가능하지만 업체마다 다르게 개발한 무선 인터넷은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또 길에서 줍거나 훔친 휴대전화도 USIM 카드만 꽂으면 자기 것처럼 사용할 수 있다. 전화를 잃어버리면 다시 돌려받기가 그만큼 힘들어진다. SK텔레콤 관계자는 "USIM 카드의 잠금 장치를 풀어 가입자가 자유롭게 쓰도록 하면 지금처럼 보조금을 많이 지급할 수 없게 된다"며 "USIM 카드의 잠금 장치를 푸는 문제는 정보통신부가 결정을 해야만 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소비자 편의를 위해서 장기적으로 USIM 카드의 잠금 기능을 푸는 게 맞지만 제한을 풀면 데이터 서비스 호환이 되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며 "이를 고려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원배 기자

◆ USIM 카드=Universal Subscriber Identity Module 카드의 약자. 가입자 정보와 신용카드 정보 등이 담겨 있다. 3세대 이동통신의 WCDMA 방식 단말기는 이 카드를 끼워야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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