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남북한 분단의 벽 넘는 독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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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화면은 북한 대학생들의 오케스트라 연습 장면. 음악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이다.

화면 속 지휘자는 파란 눈의 독일 사람. 연주 도중 흐름이 어색해지자 지휘자가 중단시킨다. 바이올린 주자인 한 남학생이 카메라를 보며 어색한 말투로 입을 뗀다. "서양음악은 재미가 떨어집네다."

독일인 지휘자가 평양의 음악학교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친 경험을 담은 다큐멘터리 '평양 크레센도' 중 한 장면이다. 독일의 한 영상회사가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한국에 온다.

알렉산더 리프라이히(39.사진)는 독일에서 주목받는 차세대 지휘자다. 1996년 콘드라신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을 객원 지휘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2006~2007 시즌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발탁된 그는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이달 말부터 네 차례 국내에서 공연한다.

그의 한국행이 특별한 이유는 한국의 분단 상황에 대한 그의 관심 때문이다. 리프라이히는 2002년 독일청소년교향악단을 이끌고 평양.서울에서 차례로 브루크너 8번 교향곡을 연주했다. 남한과 북한 연주자들이 함께 어울려 연주하는 시도도 했다. 그는 이 연주 이후 "남북한 청년들의 음악적 감수성이 똑같이 섬세해 너무나 놀랐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분단 상황 아래에서의 남북한 음악가들이 그의 주요 관심이다. 2005년에는 아예 평양의 음악대학 객원 교수로 일했다. 독일 장학재단의 지원으로 상반기 동안 평양에 머물며 북한의 미래 지휘자들에게 말러와 하르트만의 교향곡을 가르쳤다.

북한을 떠나면서 그는 "한국인은 '아시아의 이탈리아인'과 같다"며 "한국인의 생활에서 노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이 때문에 한국인들의 음악적 능력은 세계적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리프라이히는 2002년 이후 자신의 행보를 '코리아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이 경험을 모아 '독일과 한국-분단되고 통일된'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나는 분단 역사를 경험한 독일인이기 때문에 남북한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밝혔다.

28일 통영국제음악제의 폐막 공연을 맡은 리프라이히는 평소의 관심을 표현하듯 연주곡으로 윤이상의 곡을 선택했다. 그는 "윤씨의 음악은 사회에 대해 책임을 가진 그의 정신을 반영한다"고 선곡 배경을 설명했다.

독일문화원의 맹완호 문화담당관은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 21명 중 5명이 '아리랑 5중주단'이라는 이름으로 소규모 연주 단체를 운영 중"이라고 소개했다. 한국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하면서 한국 연주자들과 교류하는 단체다.

리프라이히는 31일(고양 어울림극장), 다음달 1일(성남아트센터)과 3일(대전 문화예술의전당)에도 공연한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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