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作 '조선 남자' 서울 나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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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거장 페터 파울 루벤스(1577~1640)가 남긴 드로잉'조선 남자'(사진)는 서양인이 그린 첫 한국 사람 그림으로 우리에게 뜻깊다. 1617년 작으로 어림되는 이 드로잉이 그림 주인공의 고향을 찾아 처음 한국 나들이를 한다.

오는 19일부터 내년 2월 8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루벤스-반다이크 드로잉 전'에 선보이는 '조선 남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폴 게티 미술관 소장품으로 반다이크, 요르다엔스 등 이 시기의 플랑드르 작가들 드로잉 오십 점과 함께 서울에 온다.

'조선 남자'는 소묘 작품이긴 하지만 바로크 미술의 거장으로 플랑드르 궁정의 전속 화가이자 외교관을 지낸 루벤스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소품이다. 루벤스는 외교적인 일로 유럽 왕실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인물을 폭넓게 접촉하며 초상화를 많이 그렸는데 이 드로잉도 그 가운데 한 점으로 보인다.

그림 속 남자는 소설 '베니스의 개성 상인'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로 복식으로 보면 조선 시대 무관이 입던 공복을 갖춰 입고 있다. 가로 23.5㎝, 세로 38.4㎝ 크기로 일반 공책보다 조금 큰 이 드로잉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을 화면 전면에 잘 배치한 전신 초상화로 역동적인 인물 묘사에 뛰어난 루벤스의 솜씨를 잘 보여준다. 특히 겹쳐 입은 옷의 주름 표현이나 얼굴 표정을 다룬 세밀함이 돋보인다. 입술과 귓볼, 콧등과 뺨 부분에 붉은 색연필로 살짝 강조점을 둔 점도 풍부한 색채 구사로 유명한 루벤스의 장기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198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드로잉 경매 사상 최고 낙찰가인 32만 4천 파운드에 팔려 화제를 모을 당시부터 미술사가와 평론가들 사이에서 '정말 한국 사람일까'라는 논쟁을 불러 왔던 '조선 남자'가 그 진실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셈이다. 02-580-130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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