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반전극 『콜럼버스…』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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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인형극단 「빵과 인형」의 공연 『콜럼버스-신세계질서』는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세계 정상급 「반미·반전」공연이라는 점에서 많은 연극애호가, 특히 뜻을 같이하는 국내 민족극계열 연극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서울연극제 행사중 아시아-태평양연극제에 초청된 「빵과 인형」극단은 62년 반전사회운동이 한창이던 뉴욕에서 만들어져 공연예술계의 반미·반전활동을 이끌어왔다. 이번 공연작 『콜럼버스-신세계 질서』는 미대륙발견 5백주년을 앞두고 미국내에서 「위대한 탐험가」로 칭송받고 있는 콜럼버스를 「침략자·파괴자」로 비판한 작품이다. 극단은 5백년전의 침략과 인디언학살을 작년 걸프전에서의 미군공습에 빗대어 비판, 반미·반전의 메시지를 명확히 했다.
공연은 1부 「실내이야기」와 2부「야외이야기」로 나뉘어 실내와 야외공연이 이어지게 돼 있으나,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장소사정상 1부는 동숭아트센터대극장에서(22,23일), 야외공연은 국립극장야외광장에서(24일) 나뉘어 공연됐다.
공연은 반미·반전의 메시지를 간단명료하면서도 강렬하게 던져주는 상징적 장면의 연속으로 이뤄졌다.
실내공연무대는 낡은 천막이 걷히며 시작됐다. 붉은 등이 깜박이고 다급한 무선통신음이 울리자 무대한쪽에 설치돼 있던 낡은 군복차림의 해골브라스밴드가 쇳소리를 내며 공연을 알린다.
실내공연은 콜럼버스의 운명적 이름에 대한 얘기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는 이름중 「크리스토퍼」는 『그리스도를 나르는 사람』, 「콜럼버스」는 『평화를 나르는 비둘기』란 뜻이다.
공연은 짧은 장면으로 계속된다. 점잖은 모습의 클럽버스 얼굴을 쓴 배우가 점잖은 발걸음으로 등장, 영세를 받는다. 스페인여왕을 찾아가 탐험지원을 청한다. 죄수들로 선원이 구셩된다. 마침내 육지를 알리는 비둘기를 받는다. 신세계에 도.착, 선교한다(콜럼버스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인형을 업고 있다). 선원들이 원주민을 공격, 인디언 여인 두 명이 자살한다. 신세계 질서가 확립되고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다.
짧은 장면이 암전될 때마다 해골병사들이 비춰지며 걸프전에 참전해 대량학살의 성능을 자랑한 무기들에 대한 홍보설명이 방송된다. 자연히 객석은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과 걸프전을 피해자인 인디언과 중동전 희생자의 입장에서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인다.
실내공연을 본 관객 수백명이 잔뜩 궁금증을 품고 24일 국립극장 마당에 모였다. 야외공연은 인디언을 탄압하며 북미대륙의 자연을 파괴하는 뚱보아저씨(엉클 패트소)로 변한 콜럼버스 얘기다.
넓은 마당의 왼쪽에서 인디언 무리가 등장한다. 반대편 오른쪽에서는 7명의 백인 백정이 나타나 인디언과 싸울 콜럼버스를 환영한다. 콜럼버스가 인디언을 묶은 뒤 「뚱보아저씨」가면으로 변신한다. 가면을 쓴 인디언들은 백정들에 의해 피묻은 앞치마를 입게되고, 검은 천으로 눈마저 가려진다. 백정들의 지시에 따라 대륙의 순록들을 잡는다. 순록인형속에 숨어 있던 인디언 여인들은 총소리에 쓰러진다. 해골기병대가 시체위를 지나간다.
연주는 이어 상징적 메시지로 생명의 불과 살육의 불을 보여준다.
그리고 끝으로 막 구워내 따뜻한 빵을 관객들에게 나눠준다. 거친 빵이지만 다같이 나눠먹은 관객들은 음식을 만들어주는 불의 고마움을 체감하며 잔혹했던 살상의 장면들을 떨어내고 하나가 된다.

<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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